남편의 ‘미암일기(眉巖日記)·1567∼1577’에 그녀의 행적이 소상히 기재되어 있어 이러한 면모를 상세히 살필 수 있다.
송덕봉은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라는 대중서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송덕봉은 시댁에서 자신이 담당한 역할을 강조하고, 남편이 친정 일에 좀 더 적극적이기를 요청하는 당찬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契心遙指碧霄鴻 九重衣襪褒賓友 四面溪山拱主翁 新架又盈五千卷 從今至樂示無窮]
미암은 1567년 10월 1일부터 사망하던 해인 1577년 5월 13일까지 일기(보물 260호)를 썼다. 일기에는 가정의 대소사는 물론 여러 지역에서 조사한 측우기 우량(雨量) 기록이 자세하게 나온다. 고진감래의 반대는 흥진비래(興盡悲來)인데,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니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16세기 유희춘의 일기(미암일기, 眉巖日記)를 보자.
“식후(食後)에 광선이 남원에 있는 장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광연(광선의 동생)과 어린 누이동생 봉례가 울어 눈물이 줄줄 흐른다. 형제간에 지극한 우애의 정이 어려서부터 나타나니 우리 집안의 기맥(氣脈)이다.”(1576년 4월 27일)
광선은 유희춘의 손자였다. 광선이 본가에 왔다가 처가로 가는데, 동생들이 슬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