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대우차, 기아산업이 자동차 시장에서 3파전을 이뤘다. 각각 30%대 점유율을 나눠갖던 시절이었다.
당시 신차 발표회에는 넥타이를 맨 경영진들이 앞에 나섰다. 그들은 하나같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개발비 투입"을 강조하고는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런 개발비 멘트는 사라졌다. 우리 자동차 산업에도 '플랫폼 공유'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세대 거듭할수록 차 크기 늘어나실제로 대우차 브로엄의 차 길이는 4890mm다. 기아 중형차 K5의 길이(4905mm)보다 짧다. 그나마 너비와 높이는 준중형차인 K3 수준에도 못 미친다.
실내공간 크기를 결정짓는 휠베이스(앞뒤 바퀴 축 사이의 거리)는 K3가 2700mm인 반면, 그 옛날 대형 세단이었던 브로엄은 이보다 짧은 2670mm다. 20여 년 전 대형 세단이 요즘 기준으로...
2003년 주류업체 진로는 존속가치가 2배가 넘는다는 평가를 받았고요. 2001년 대우차도 존속가치가 9300여억 원 더 높다는 평가를 받아 청산으로 가지 않고 GM(지엠)에 인수됐죠.
청산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게 된 쌍용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쌍용차 인수 문구 한 줄에 주식이 급등하는 ‘먹튀 논란’까지 벌어진 지금, 인수전의 승자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준오 당선자는 2004년 대우차 노조 군산지부장, 2006년 대우차 노조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현장조직 ‘동행’의 의장을 맡은 인물이다. 김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고용불안 없이 일할 수 있는 한국지엠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사 측의 도발을 더는 묵과할 수 없는 만큼, 노조의 명운을 걸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담대하게 투쟁하겠다”라고...
대우차가 그랬고, 상하이차와 마힌드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수 이후 쌍용차의 성장을 주도할 ‘투자’에는 인색했던 것이지요. 반복해서 쌍용차가 매물로 나오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투자자가 아닌, 인수 상대만 찾았기 때문입니다.
한때, 국내 대형 타이어 유통업체가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겠다”라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수 이후 구체적인...
현재 쌍용차는 본격적인 친환경 차 시대를 맞아 현행 제품 개발 과정 전반을 손보는 중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새 모델을 선보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쌍용차의 제품개발 프로세스는 20년 전 파산한 대우차 시절의 개발과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알파벳+세 자리 숫자’인 쌍용차의 프로젝트명 체계 역시...
2000년대 초, 현대차와 기아ㆍ대우차가 ‘7인승 LPG 미니밴’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참여정부’ 시절이었던 2004년, 주요 공공기관이 주5일제를 시작하면서 자동차 시장 역시 세단 일색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값싼 유지비 덕에 SUV와 미니밴 등 덩치 큰 차의 인기가 본격화됐다.
SUV와 미니밴이 증가하면서 우리는 덩치 큰 차에 대한 부담감도...
현대차와 기아(아시아자동차), 대우차, 쌍용차가 버스 산업에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때였다.
시장 규모도 점진적으로 커졌다. 본격적으로 고속도로망이 전국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버스 산업도 성장세에 들어섰다.
1991년 10만5713대 수준이었던 버스 생산은 6년 만인 1997년에는 2배를 훌쩍 넘게 성장해 24만2871대에 달했다....
대우차 시절부터 32년간 생산기술을 담당한 유경삼 차장은 수많은 시간을 신공장 건설에 할애했다. 입사 직후에는 현재의 창원공장을 짓는 작업에 참여했고 이후에는 우즈베키스탄, 인도, 베트남 등 해외 생산기지 건설에 관여했다. GM 인수 이후에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공장 건설에 힘을 쏟았다. 유 차장은 "출장 때문에 해외에서 잔 날만...
◇IMF 구제금융 시절 절정에 달했던 대한민국 경차
이를 지켜보던 김우중 당시 대우자동차 회장은 가만히 머물러있을 수 없었다.
소형차 만들기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대우차는 기아산업과 정면대결 대신, 그 아랫급인 경차 시장을 파고드는 묘수를 짜냈다.
김 전 회장은 서둘러 국민차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대우국민차를 세웠고, 일본 경차 브랜드...
생산할 대우국민차를 설립한 뒤 창원공장에서 티코를 만들었다. '작은 차, 큰 기쁨'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티코는 사회 초년생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출시 첫해에만 3만 대가 넘게 판매됐고,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서는 월 1만 대 이상 팔리기도 했다.
티코의 인기가 계속되자 현대차는 1997년 아토스를 내놓았고, 대우차는 티코의 후속으로...
타타대우는 외환위기 이후 인도의 타타그룹이 대우차 트럭 부문을 인수해 탄생한 회사다. 지금까지 이 회사는 노부스와 프리마 등 중대형 트럭과 특장차를 전문적으로 만들었지만,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수년간의 준비 끝에 준중형 트럭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국내 준중형 트럭 시장은 연간 약 1만 대 규모다. 이 중 현대차 ‘마이티’가 90% 넘는 시장점유율로...
노조 "3년 연속 임금 동결, 망한 대우차 시절에도 없었다."
◇노조 "복지 줄고 임금 동결했는데 노동강도 상승"=노조는 2년 연속 임금을 동결했는데 3년 연속 동결은 생사가 걸린 문제라며 강경한 뜻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한국지엠은 글로벌 GM이 유럽시장에서 철수하자 유럽 수출물량을 책임져온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2018년 5월)를 결정했다....
당시 대우차 역시 GM 산하 오펠 카데트를 바탕으로 르망을 생산한 뒤 ‘폰티액 르망’으로 미국에 수출했다.
◇마힌드라-포드 전략형 SUV 위탁생산 가능성 제기=쌍용차가 위탁 생산할 수 있는 적절한 모델도 있다.
앞서 2018년 인도 마힌드라는 미국 포드와 함께 북미형 중형 SUV 개발에 합의했다. 포드가 중형 SUV 개발을 주도하고 마힌드라가 이를 생산해...
1955년 신진공업사로 시작해 대우차 등을 거쳐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된 뒤 자일대우로 이름을 바꿨다. 울산공장은 대우버스의 유일한 국내 생산기지로 현재 600명 이상이 재직 중이다.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코스타리카, 미얀마 등에는 해외 생산법인을 두고 있고, 국내외를 합쳐 연간 2만 대가량의 생산능력을 갖춘 상태다. 사측은 울산공장 문을 닫고 베트남...
1955년 신진공업사로 시작해 대우차 등을 거쳐 2003년 영안모자에 인수된 뒤 자일대우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는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코스타리카, 미얀마 등에 해외 생산법인을 두고 있고, 국내외를 합쳐 연간 2만 대가량의 생산능력을 갖춘 상태다.
한때 현대ㆍ기아차와 버스 시장을 양분하던 대우버스가 수십 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국내 공장 가동...
타타대우상용차는 외환위기 이후 인도의 타타그룹이 대우차 트럭 부문을 인수해 탄생한 회사다. 트럭과 특장차를 전문적으로 만들며 한국 상용차 시장과 성장을 함께한 타타대우는 2016년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현재는 1300여 명의 직원이 연간 2만3200대 가량을 생산하고, 60개국에 수출하는 회사가 됐다.
타타대우는 지난해 ‘인생 트럭, 고객의 소리로...
대우차 노조 위원장 출신인 홍영표 의원은 “한국지엠이 지난 몇 년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선구자라는 이름처럼 트레일블레이저가 한국지엠이 새롭게 도약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하반기 출시한 픽업트럭 콜로라도와 대형 SUV 트래버스가 출고되기 시작하며 점진적인 판매실적 반등을 이뤄냈다....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장영수 홍성부 전 대우건설 회장, 강병호ㆍ김석환 전 대우차 사장 등 옛 대우그룹 임원들은 이틀 연속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다. 또한, GM대우 시절 김 전 회장과 인연을 맺은 당시 노조원 10여 명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정ㆍ재계 인사 외에도 전날 늦은 오후에는 배우 이병헌, 송승헌 등이 빈소를 찾아 늦은 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