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나 나름대로 쿠바식 사회주의를 지키려고 애쓰며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독재 정권 항거의 혁명을 시작했던 곳이다. 카스트로의 무덤은 바로 그곳에 있다. 사람 키 높이 크기만 한 돌덩어리가 하나 있고, 거기 가운데 ‘피델(FIDEL)’이라고만 쓰여 있다. 아바나가 됐든, 산타 클라라가 됐든, 시엔푸엔고스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쿠바혁명 직후부터 눈엣가시인 카스트로를 없애기 위해 독극물 우유, 폭탄 조개, 폭발물 담배, 고압 전기, 심지어 옛 연인까지 동원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천년만년 영생을 누릴 것만 같았던 카스트로. 하지만 그 역시 ‘세월의 벽’은 넘지 못하고 지난달 25일 혁명의 동지이자 친구인 체 게바라(1928~1967)의 곁으로 갔다.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카스트로는 쿠바 공산혁명의 지도자로 독재 정권으로부터 쿠바를 해방시켰지만 그 뒤 본인도 독재 체재를 고수한 인물이다. 그가 사망한 직후 미국의 유일한 쿠바 테마 펀드인 허츠펠드 캐리비언 베이신펀드 수익률이 10% 이상 치솟았다. 쿠바 경제가 개방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쿠바 등 카리브해에 집중 투자하는 허츠펠드는 쿠바가 문호를...
우리 정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월 우리 외교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한ㆍ쿠바 외교장관회담을 진행했다. 당시 윤 장관은 수교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쿠바와의 수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지만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양국 간 교류는 단절됐다.
하지만 카스트로가 49년간 쿠바의 최고 지도자로 재임한 반면, 1967년 체 게바라는 쿠바를 떠나 콩고와 볼리비아에서 사회주의혁명 운동을 이어 오다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했습니다. 한편, 피델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난 후 쿠바 수도 아바나에 그를 기념해 만든 25m 높이의 거대한 청동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로 오히려 쿠바와 미국 양국 국교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반세기 만에 간신히 정상화 절차를 밟는 양국 관계가 다시 급랭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공산 혁명에 성공한 정치지도자였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큰 재앙이었다. 세계은행이 공식 집계한 쿠바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0달러 수준. 북한이나 다른 공산독재국가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일 뿐이다. 공산독재국가들이 흔히 그렇듯 실질 환율에 비해 엄청나게 낮은 공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쿠바 혁명 후의 탁월했던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는 "지난 9월 쿠바를 방문해 만났을 때 세계정세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말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카스트로 전 의장이...
산티아고 데 쿠바는 그의 고향 비란에서 가까운 곳이며, 피델 카스트로가 과거 산티아고 데 쿠바 시청의 발코니에서 쿠바 혁명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해 '혁명의 도시'로 불리는 곳이다.
유해 전국 순회가 끝나는 내달 3일 산티아고 데 쿠바의 안토니오 마세오 광장에서 다시 추념식이 열리며 이튿날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묻히는 것으로 장례 일정은 모두 끝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카스트로의 사망에 대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내 슬픔을 전한다”며 “카스트로의 영면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지난...
쿠바 공산주의 혁명의 상징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26일 타계했다. 향년 90세.
이날 영국 BBC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쿠바 현지 TV 보도 내용을 인용해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밤 10시 29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일제히 전했다.
1926년 쿠바 올긴에서 태어난 카스트로 전 의장은 하바나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1926년생인 피델은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친미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에 성공했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쿠바를 이끌다가 건강 문제로 2006년 친동생 라울에게 정권을 넘기고 2008년 공식 직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 피델 카스트로는 누구인가?
본명은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Fidel Alejandro Castro Ruz)로 1926년 8월 13일 농부인 앙헬 카스트로...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교류가 단절됐던 한국과 쿠바 양국의 경제인들이 57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코트라와 공동으로 30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시에서 미수교국가인 쿠바와 제1차 민간 경제협력위원회를 개최하고, 전력․에너지, 바이오의료, 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쿠바...
1958년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승기를 잡은 카스트로와 게바라는 19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혁명에 성공한다. 그 뒤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거치며 쿠바의 두뇌로 불린다. 하지만 1965년 4월 돌연 아프리카 콩고로 떠난다. 권력에 물들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혁명군을 위해 싸우다 1년 뒤 남미의 볼리비아로...
그는 라울 의장과의 회담에 앞서 쿠바 혁명을 이끈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도 아바나 시내에서 환담을 나눴으며 현지 일본계 사람과도 간담회를 가졌다. 아바나 시내 중심에 있는 혁명광장을 방문해 쿠바 독립 영웅인 호세 마르티의 기념비에도 헌화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도 25~28일 쿠바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중·일 양국이 쿠바와의 협력 강화를 놓고...
류슈친 전 쿠바 주재 중국 대사는 “중국 주석들은 1993년 이후 최소 한 차례 이상 쿠바를 방문했으나 그동안 총리들은 그렇지 않았다”며 “리 총리의 역사적 방문은 양국의 정치적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무역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설적인 혁명가인) 피델 카스트로가 건강이 허락되는 한 리 총리와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스타우드호텔스&리조트월드와이드가 미국 호텔 중에서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57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에 진출하게 됐다고 2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스타우드는 웨스틴과 쉐라톤, W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글로벌 호텔체인이다. 스타우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88년 만에 첫 쿠바 방문 하루 전인 전날 쿠바 정부와...
통신은 "김영남 동지, 박봉주 동지, 양형섭 동지 등과 쿠바 국가이사회 부위원장인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 동지, 잔시 포시캄 라오스 인민혁명당 비서 겸 당 조직위원회 위원장, 하 티 키엣 베트남 공산당 비서 겸 당 대중운동부장이 주석단 초대석에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중앙방송은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박봉주 내각 총리,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 의장 내외와 비공식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교황청은 전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1959년 쿠바 혁명을 이끌고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가 건강 문제로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2008년 은퇴했다.
한편, 이날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봉사와 사랑을 주제로 대규모 미사를 집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