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안병억펴낸곳: 페이퍼로드
*의 뒤를 이은, 국제관계 전문가 안병억의 두 번째 유럽사 이야기
“철학자 칸트와 대문호 괴테의 나라가 어떻게 히틀러 같은 괴물을 낳았을까?”
1981년부터 14년간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의 포로가 된 적이 있었다. ‘독일’이란 나라를 두고 한 그의 질문은 독일 역사의 핵심을...
지난 4일 라스베이거스 유세에서는 2020년 미국 대선 승리 뒤 참석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회고하던 중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으로 혼동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언급할 때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칭하며 '프레지던트 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도 비슷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바이든...
5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선거 유세에서 2020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하다가 마크롱 대통령을 1996년 숨진 고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으로 잘못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회담에서 가장 먼저 한 말이 ‘미국이 돌아왔다’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자...
당시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은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와 수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통일 독일이 계속해서 유럽통합에 함께 할 것이며 일방적인 외교정책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얻어냈다. 독일은 이런 보장의 하나로 마르크화의 패권을 포기해 단일화폐 유로화 출범을 길의 열었다. 대신 독일은 유로화를 관장할 유럽중앙은행이 엄격한 물가관리에 중점을...
그는 프랑스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사회당 소속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재임 중 재무장관으로 일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어 유럽의 통합이 여전히 약해 보였던 1985년 미테랑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EU 집행위원장으로 임명돼 1995년까지 역임하면서 최장기 EU 집행위원장 기록을 세웠다. 유럽 단일 시장과 단일 통화,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 때 그녀가 같이 왔다. 그녀를 보려고 몰려든 군중을 보고 미테랑 대통령은 통역사에게 “내가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는 줄은 몰랐소”라며 대단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그녀는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다 잘 된 거야’로 컴백했다. 오늘은 그녀 생일. 1966~
☆ 고사성어 / 연년세세(年年歲歲)
해가 네 번 거듭되는...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리콴유, 우리나라의 박정희, 프랑스의 드골과 미테랑 등이 달성한 많은 업적들은 당시 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고 추진한 것들이다. 여론을 무시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론이 데이터와 사실에 기반하는지, 아니면 두려움과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에 기반한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한국을 제외한 미국, 유럽, 일본의 정책...
첫 여성 총리는 에디트 크레송 전 총리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1년 5월부터 1992년 4월까지 내각을 이끌었다.
그는 짧은 취임 기념사에서 “내가 총리로 지명된 것을 모든 어린 소녀들에게 바치고 싶다”며 “그들에게 꿈을 쟁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더 빠르고 강하게 대응해야 하며...
지스카르 데스탱은 1974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이 재직 중 갑자기 사망한 뒤 치러진 대선에서 우파 후보로 나와 프랑수아 미테랑을 누르고 승리했다. 취임 당시 48세로,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2017년 39세에 취임하기 전까지 제5공화국의 최연소 대통령이었다.
그는 1981년까지 7년간 집권하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창설에 이바지했다.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5공화국 대통령 가운데 좌파의 거두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다음으로 프랑스를 오래 통치했다.
시라크는 현재 제1야당인 중도우파 공화당(LR)의 전신인 공화국연합(RPR) 창당을 주도하는 등 정통 우파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평을...
워싱턴 국립미술관을 보고 감명을 받은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1983년 페이에게 루브르 박물관 리노베이션을 맡겼다.
지금 루브르의 상징이 된 21m 높이의 거대 유리 피라미드를 두고 당시 프랑스 르몽드는 ‘디즈니랜드 별관’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페이는 “동시대 건축가들은 현대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오래가는...
부시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자크 시라크 대통령 등 각국의 정상이 호텔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2017년 APEC 정상회의 당시 해당 호텔을 찾은 적 있다. 메트로폴 호텔은 오페라 윙 프리미엄, 히스토리컬 윙 럭셔리, 히스토리컬 윙 그랜드 럭셔리룸, 오페라 윙 그랜드 프리미엄룸, 오페라 그랜드 프리미엄 클럽 킹, 오페라 윙 그랜드 프리미엄...
“만델라는 쿠투조프 장군이 러시아 사람들을 마음속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테랑 대통령 때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은 ‘만델라 평전’에 이렇게 썼다. 쿠투조프는 부하들이 원하는 것을 완벽히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만델라는 국민들의 필요를...
1995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홍삼을 복용한다는 사실이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지’에 대서특필되기도 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쩌민, 시진핑 주석 등 국빈들의 한국 방문 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물로 애용됐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정관장 홍삼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당신은 아첨꾼을 싫어하시는군요?” 미테랑 대통령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도 자신의 ‘만델라 평전’에 데시우스의 대사를 적어 넣었다. 아부의 물결이 도처에서 밀려오는데도 만델라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도 시저처럼 아첨을 좋아했지만, 시저와는 달리 “아첨꾼을 싫어하시는군요?”라며 접근하는 아첨꾼을 골라냈기...
그는 2012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그의 개인 요리사 다니엘레 델푀의 우정을 그린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에서 미테랑 대통령 역으로 출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르피가로에 추모글을 기고했다. 그는 “고인은 사람들을 더 현명하고 행복하고 선하게 만들어주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대화로 인도하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콜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서독 통일을 위해 미국·소련·프랑스 등을 설득한 업적을 소개한 뒤 “그 배경에는 콜 총리 집권 초반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세계대전 희생자를 함께 추념하며 유럽을 화해로 이끈 힘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통일 독일의 첫 총리가 된 콜이 유럽통합의 주역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베를린 시장이었던...
이에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유럽의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자 유로화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콜은 임기 내내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와 라이벌로 꼽혔다. 그만큼 유럽 통합을 놓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다.
동독 정부 부대변인이었던 앙겔라 메르켈을 독일 중앙무대에 세운 것도 콜 전 총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과거 프랑스에 좌파의 미테랑 대통령과 우파 시락 총리의 동거 정부가 있었다. 그 당시 두 사람이 상호 불신하여 국제회의에 미테랑과 시락이 동시에 참가한 우스꽝스러운 일도 발생했다.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정당이 다른 데서 나오는 갈등이 커지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같이하고 선거도 동시에...
일각에서는 미테랑 정부 시절인 1993년 하원 선거에서 프랑스 사회당이 577석의 10분의 1인 57석밖에 배출하지 못했던 때와 비슷한 현상이 재현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프랑스 의회는 하원 우위의 양원제로, 총리는 하원에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출신이 맡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하원의 다수 의석 확보는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필수적이다.
현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