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CFO인 김대환 전무는 금융일류화추진팀에서 근무하다 승진 후 다시 삼성생명으로 복귀했다. 삼성화재 전용배 부사장은 미래전략실 경영지원팀장 등을 거친 재무통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계열사 CFO들은 CEO에 이은 확고한 ‘넘버2’”라며 “미전실이 없는 상황에서 CFO와 CEO 간의 호흡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골프웨어전문기업 슈페리어(대표이사 김대환)가 한국프로골프(KPGA0투어 통산 6승의 이승호와 계약식을 가졌다.
슈페리어와 이승호는 31일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슈페리어 본사에서 메인후원 조인식을 갖고 이승호의 안정적인 투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후원해주는 것으로 협약을 맺었다.
2005년 4월 프로에 입문한 이승호는 2007년 삼성...
HP코리아 김대환 대표는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업용 PC 4종을 공개했다. 노트북·태블릿·미니 데스크탑·미니 워크스테이션으로 구성된 새로운 라인업은 보안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HP가 분사된지 1년 동안 IT환경에 적합한 신제품을 공개하기위해 노력을 더 기울일 수 있었다”며 “지난 1년간 게이밍 노트북...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1920.4.15~2015.1.31)는 통독 이전인 1984년부터 통독 이후인 1994년까지 재임한 통일 독일의 초대 대통령이다. 그는 ‘독일의 양심’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8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에서 “독일인은 누구든, 죄가 있든 없든 독일이 저지른 과거의 부끄러운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것이 나치로부터 고통 받은 많은...
결국 왕을 지지하는 왕당파와 왕을 비판하는 의회파 사이에 내분이 격화되었고, 1642년 전쟁이 발발한다. 이른바 청교도 혁명이었다. 처음엔 왕당파가 유리했지만 올리버 크롬웰이라는 의외의 복병이 나타나 전세를 뒤집으며 의회파의 승리로 끝난다. 찰스 1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김대환 편집위원 daehoan3000@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그는 프랑스 국민공회에서 혁명의 완성을 위해 노력한다.
1802년 9월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는 곧 미국을 위한 자신의 노력은 모두 잊히고, 새로 기득권층이 된 이들에게 이단자로 취급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페인은 술을 마시면서 씁쓸함을 달래다가 1809년 홀로 생을 마감한다.
김대환 편집위원 daehoan3000@
영국에서 단역배우를 하던 오드리 헵번(1929.5.4~1993.1.20)에게 1951년 잇따라 행운이 찾아온다. 그해 봄, 귀엽고 발랄한 헵번을 눈여겨본 프랑스 여성 소설가 콜레트(1873~1954)가 자신의 소설을 각색한 브로드웨이 연극 ‘지지’에 그녀를 캐스팅한다.
때마침 영화 ‘로마의 휴일’을 준비하던 윌리엄 와일러 감독도 연극을 보고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전격 발탁한다....
폴 세잔(1839.1.19~1906.10.22)은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다. 은행가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도 그림 공부를 하러 파리로 떠난다. 그리고 절친 에밀 졸라의 권유로 파리의 아카데미 쉬스에서 미술 공부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기교가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한 우울증을 겪는다.
결국...
책을 쓰기 위해 몽테스키외(1689.1.18~1755.2.10)는 여행을 자주 다녔다. 단순한 유람 이상의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엄청난 양의 관련 자료를 찾은 뒤 현장에 가서 그 내용을 확인했다. 역저 ‘법의 정신’도 영국과 네덜란드 여행을 토대로 쓴 책이다. 당시의 여느 사상가들처럼 순수한 추론으로 쓴 게 아니라 사실을 토대로 기술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1920년대 미국의 악명 높은 갱단 마피아의 두목 알 카포네(1899.1.17~1947.1.25)를 당시 사람들은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뉴욕의 뒷골목을 전전하던 10대 카포네에게 1920년 시행된 금주법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시카고 갱단 두목 조니 토리오가 무허가 술집 주인들을 협박해 밀주를 팔게 하는 돌격부대 책임자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는 토리오와 함께 밀주와...
진짜 선비에겐 변절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저 일편단심일 뿐이다. 이들은 ‘예의’로 행동을 규제하고 ‘염치’로 마음을 단속했다. 일제 강점기 시인 이육사(1904.5.18~1944.1.16)는 그런 선비였다. 당시 많은 문인들이 변절한 데 반해, 그는 글과 행동으로 끝까지 일본에 항거한다.
본명이 원록(源祿)이었던 이육사는 어려서부터 형제간 우애가 깊고 용모가 단정한...
그는 타이완을 국제적 고립에 빠뜨렸던 국민당의 ‘대만과 공산 비적은 양립할 수 없다’[漢賊不兩立]는 외교 정책에도 손을 댄다. 원칙은 고수하되 유연하게 대응하는 탄력 외교로 국제무대에서 호응을 얻었다. 그는 지금도 정정하게 정치적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김대환 편집위원 daehoan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