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전략사령부에 근무하다 광복을 맞은 그는 정부 수립 후 외무부장관에 기용됐으며, 주유엔대사로 한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에 공헌했다.
휴전협정 후 휴전 감시단인 ‘중립국감시위원단’에 체코와 폴란드가 공산국가 대표로 포함되자 자유당 정권은 학생들을 동원해 “체코 파란(폴란드) 물러가라”는 관제시위를 벌였다. 그러던 중 유엔대표부 상임대사...
광복 후 조선공산당,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을 결성한 이현상은 1948년 월북해 유격전 등 교육을 받고 월남했다. 한국전쟁 때 이현상 부대는 낙동강까지 진격해 위세를 떨쳤으나 인천상륙작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이 심해지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이후 그는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총사령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이현상의 토벌 없이...
광복 후엔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하는 등 지역문화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유럽으로 떠났던 윤이상은 점차 국제적 명성을 쌓아갔지만 독일 유학생 간첩단 사건인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2년간 복역했다. 가혹한 고문으로 자살 기도를 했던 그는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썼는데, 독일에서 초연돼 31회의 커튼콜을 받기도 했다. 병원에 입원한...
광복 직후 미 군정청 고문직도 사양하고 누룩을 생산하는 한국곡자(?子)주식회사를 설립, 사장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곡자 운영과 종친회 일을 하고, 1960년 주간종합잡지 ‘주간대중(週刊大衆)’의 동인이자 필진으로 참여했다.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4회나 수상했다. 민족정경문화연구소는 1948년 발간한...
문제는 우리 역사가 아직도 광복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의 역사 인식 부재와 식민사학이 문제였다. 다행히 지금까지 한국의 추격자 전략에서는 역사의 중요성이 전면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선도자 전략에 돌입하기 위한 미래 예측의 기본은 역사 인식이 요구된다. 국가와 민족은 역사로 비로소 완성된다. 열린 역사로 세계와 소통하자.
한국 역사의...
또한,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8월 14일 하루 동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시행한 결과, 고속도로를 이용한 차량의 수는 518만대, 전국 등록차량 4대 중 1대꼴로 역대 두 번째로 많았지만, 전국 어디서도 극심한 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한 연구소는 이날 하루 동안의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로 인한 내수 진작 효과가 1조4000억 원에 이른다고...
10)은 1910년대 국내의 대표적인 비밀결사인 광복단을 이끌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한훈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당숙에게 입양됐다. 그는 을사늑약 직후 친형 한태석과 함께 열여섯 살에 홍주의병에 가담했다. 한훈은 을사오적 암살이 여의치 않자 적산 군수를 사살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경술국치 후 채기중과 풍기에서 광복단을 조직했으며 조선국권회복단과...
1945년 광복과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도 일제의 주세령은 이름만 주세법으로 바뀐 채 기본 골격은 유지됐다. 전통 청주는 일본식 청주에 이름을 빼앗긴 후 아직까지 되찾지 못하고 있다. 조선주라는 분류는 사라졌지만 탁주, 약주 등은 전통주라는 묘한 이름으로 구분되어 불리고 있다. 전통주라는 이름은 현재의 생활과 괴리되어 있고 세련되지 못한 느낌을 준다....
지난해 8월 광복 70주년을 맞아 해군순항훈련에 첫 물품 후원을 했던 세븐일레븐은 이번 공식 후원 협약을 통해 순항훈련전단에 향후 5년간 총 1억 원 상당의 물품을 후원한다. 후원 물품은 생필품을 비롯해 라면, 과자, 생수 등으로 순항훈련 기간 동안 선상에서 지내야 하는 생도들의 생활 편의용품 중심으로 구성했다.
해군사관학교는 세븐일레븐 임직원 및...
망국의 울분과 광복의 열망이 ‘우리은행 뿌리’인 셈입니다.
이 같은 인연 때문에 우리은행에서 보는 영화 흥행은 남다릅니다. 시계열을 한 번 더 16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초체력이 바닥난 하나로종금과 광주ㆍ경남ㆍ평화ㆍ한빛은행은 2001년 우리금융지주를 설립한 뒤 정부로부터 12조8000억 원을 수혈받았습니다. 이후 몇 차례...
서울시는 22일 남산 예장자락에 있는 옛 통감관저터 등에서 '남산의 광복'이라는 이름으로 착공식을 가졌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독립운동가 후손 등이 참석했다.
시는 "일제강점기 때 이 일대가 훼손된 이후 한 세기 만에 맞는 '남산의 광복'"이라며 "역사성과 자연성을 회복해 억압, 폐쇄, 권위의 공간이던 이곳을 개방, 자유, 시민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샘표는 광복 후 1946년 집이 없는 피난민들에게 장을 만들어 공급하기 위해 시작됐다.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라는 창업주 박규회 회장의 신념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이에 현재까지 국내 간장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꾸준히 지키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샘표는 우리맛의 핵심인 ‘발효’기술을 개발해...
주암 휴게소(순천 방향)는 제 71주년 광복절을 맞아 고객에게 나라사랑 차량용 태극기 무료 나눔행사를 가졌다고 18일 밝혔다.
주암휴게소는 지난 광복절에 고객들에게 차량용 태극기 300여장을 나눠줘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광복절을 기념해 태극기를 나눠 준 주암휴게소는 지난 삼일절에도 같은 행사를 가진 바 있다.
휴게소 관계자는 “태극기의...
광복절 하루 전날, 자기 SNS에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보란 듯이 걸었더라고. 평소였더라도 비난받아 마땅한 이 행동이, 광복절을 하루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공분을 이끌어냈어. 생각 없는 그녀의 행동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
욱일기는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이었던 일본 군대를 상징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기념식에서 알맹이 없는 낭독문으로 감흥 없는 박수를 받았다. 경축사는 애국심과 분발, 배려를 호소하며 자기비하와 정쟁 중지를 촉구하는 내용이었지만 새로운 대안 제시나 감동적인 메시지는 역시 없었다. 박수는 많았던 것 같은데 대체로 ‘영혼 없는 박수’로 보였다.
2013년 취임 후 네 번인 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특이한...
청와대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건국 68주년’ 발언에 대해 “광복절 경축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말한대로 국민의 저력과 자긍심을 발휘하고 긍정의 힘을 되살려서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자는 말씀으로 잘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박 대통령이 광복 71주년 경축사에서 “오늘은...
전국 민생투어를 진행 중인 김 전 대표는 이날 오후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광복 71주년을 맞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나라를 더 잘 발전시켜야 되겠다는 의무감이 강하게 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같은 언급으로 차기 대권에 대한 포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전국을 돌며 민생투어 중인 김 전 대표는 앞서 이날 오전...
황 총리는 이날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독립운동가 김유길(97세) 애국지사의 자택을 찾아 이같이 밝혔다.
김 지사는 황해도 평원에서 태아나 1944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항일투쟁에 참여했고, 1945년에 국내정진군 경기도 제3조에 편성돼 국내 진입을 기다리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김 지사는 지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황 총리는...
광복 71주년인 15일 서울 신천동 송파구청사거리에서 열린 ‘광복! 그 벅찬 감동, 춤815 플래시몹’에 참석한 2000여명의 시민들이 대형 태극기를 올림픽공원까지 머리 위로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광복을 보지 못한 무명 청년 독립용사들을 기리고, 해방의 기쁨과 벅찬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마련됐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광복 71주년인 15일 서울 신천동 송파구청사거리에서 열린 ‘광복! 그 벅찬 감동, 춤815 플래시몹’에 참석한 2000여명의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이번 행사는 광복을 보지 못한 무명 청년 독립용사들을 기리고, 해방의 기쁨과 벅찬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마련됐다. 신태현 기자 holjj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