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기를 내세워 당선된 이 전 대통령은 얼핏 이해가 된다. 반면 박 대통령은 정치판에서 대단한 정치 역정을 쌓아온 터라 낯선 느낌이다.
이 전 대통령은 주요 정책이 정치 현안으로 커질 때마다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종시 문제도 그러했고, 한미 FTA 협상비준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역풍에 국정 엔진이 큰 상처를 입었다. 논의와 협상이 필수적인 정치적 문제를 기업의 CEO처럼 자신 생각을 관철하려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거리 두기는 특정 정파의 정치인이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최고지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방안인 듯하다. 경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지일 수 있다.
박 대통령도 경제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정작 경제는 잘 풀리지 않고 있다. 핵심 경제정책이 국회 문턱에 번번이 걸려 표류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렇다. ‘박근혜 노믹스’가 제대로 가동도 못 한 채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났다. 경제정책을 지나치게 비정치적으로 접근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에 신경을 더 쓴 덕에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에 제대로 공을 들였으면 어땠을까. 정치는 물론 경제까지 훨씬 매끄럽게 돌아갔을 수도 있다.
경제의 정치화는 대세다. 싫든 좋든 엄연한 현실이다. 포퓰리즘의 창궐 같은 폐단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밉상이라고 그냥 외면하고 멀리할 수만 없다.
전두환 정부 때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마음먹은 대로 정책을 펼 수 있었다. 국회가 거수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저변이 확장되면서 의사결정의 무게중심이 국회로 이동하기 시작해 이제는 국회의 협조 없이는 경제정책을 펼치기 어렵다. 국회선진화법이 2012년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도입된 이후 더욱 그렇다. 의원입법까지 정부 발의의 10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의 만남은 정치 불통을 깨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재임 1년 반 동안 야당 지도자를 세 번 만났다. 지난해 4월, 문희상 당시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9월엔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를 만났다. 그리고 올해 7월,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회동했다. 고무적인 점은 박 대통령이 정례회동을 제의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최경환호가 벌써 기로에 섰다. 다시 얼어붙은 세월호 정국에 출항조차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살리기는 일단 통했다. 환호까지 터졌다. 2011년 장기불황에 빨려 들어간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시장에 온기가 돌고, 주가는 박스권을 뚫었다. 7·30 지방선거까지 여당 압승으로 돌려세우는 괴력도 과시했다. ‘최노믹스’란 문패까지 붙었다.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만 붙을 법한 어마어마한 타이틀이다.
출범 36일을 맞은 21일 현재, 풍향계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나. 그 사이 감성모드에서 이성모드로 전환돼서일까. 여기저기서 티격태격 소리가 난다. 사실 ‘최노믹스’는 옴니버스 버전이다. 재정투입이란 케인지안의 대표적 부양책을 앙숙인 신자유주의의 대표 도구인 규제완화와 함께 배치한 뒤 여기에 진보 진영의 소득주도 성장을 붙이고, 기업소득환류세제란 한국형 신병기를 전진 배치하는 식이다. 논리적 모순과 이념적 반목이 그득해 시간과 장애물에 취약하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급파해준 기준금리 인하란 통화정책 원군은 이미 실전에 투입된 상태. 총체적인 불균형 때문에 금세 망가지기 십상이다.
정치불통은 경제불황과 사회불신 등 온갖 불(不)을 키우는 만병의 근원이다. 정경 통섭형 리더가 정말 시급한 이유다. ‘최노믹스’도 불통 위엔선 꽃을 피울 수 없다. 통즉불통(通卽不痛·흐름이 통하면 아프지 않다)이다. 적임자인 최 부총리가 하루빨리 소통 행진에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