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회장이 취임한 지난 3월 14일. 그는 “전임 회장이 벌여놓은 수십 개의 사업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데 과연 이것이 경쟁력이 있는지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곳간 챙기기부터 나섰다.
그러던 중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포스코에 동부패키지 매수를 공식 제안한 것. 이때부터 취임 100일까지 권 회장의 최대 고민이 시작됐다.
취임 초기 권 회장에게 국책 금융기관인 산은의 제의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당진발전소가 포함된 동부패키지는 포스코에 분명 매력적 매물이었다. 발전사업은 조선ㆍ해운ㆍ철강산업 위축으로 고전하고 있는 포스코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기회였다. 포스코는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자 선정 입찰에도 도전했지만, 지난해 탈락하면서 쓴맛을 본 터였다.
매물로 나온 당진발전소는 인허가가 가장 확실하고 철탑 송전선로도 이미 확보가 돼 있었다. 또 수요 산업단지가 많아 안정성 측면에서 우수했다. 반면, 동부인천공장은 1977년 설립된 오랜 역사만큼 시설이 노후돼 단기적으로는 설비보수에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동부패키지는 인천공장의 부담을 감안해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실탄은 부족했다. 권 회장은 더 머리를 싸매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포스코에너지가 동양파워 입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셈법은 더 복잡해져 갔다. 포스코의 동부패키지 포기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권 회장은 당초 이달 11~12일께 동부그룹 자산의 내부 분석 보고서를 받고 인수 여부를 확정 지으려고 했지만, 예상일이 지나서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출근길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사안이 복잡한 모양이다”라는 말로 모든 설명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는 실사 결과를 받고 나서도 보고서 재검토를 지시했다.
결국, 권 회장은 장고(長考) 끝에 동부패키지 카드를 버리고 동양파워를 집어들었다. 재무적 부담과 시너지 효과를 수없이 저울질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업계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산은을 멋쩍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번 결정으로 포스코는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 회장 역시 “포스코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지켜내며 한결 홀가분해졌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