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시스템경영 도입 '바람'

입력 2006-05-19 16:45 수정 2006-05-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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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1인의 불행이 기업 장래 좌우해서는 안된다' 의식

"한국에선 기업 총수가 구속되면 그룹의 경영기반 자체가 위협을 받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몽구 회장의 구속으로 현대차그룹이 신차개발과 판매 차질을 빚고 해외 공장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대외 신인도도 타격을 받자 독일계 다국적 기업의 모 한국법인장이 한 말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거대 기업의 총수 1인의 공백이 너무 크다는 평가와 함께 재계에선 '총수 1인의 불행이 곧 회사의 불행'으로 연결될 수 있는 현 대기업의 경영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선 실험적인 성격이 짙기는 하지만 '시스템경영'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시스템경영은 기업경영이 개인이나 특정 조직에 의존하거나 좌우되지 않고 급변하는 외부 경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당초 세운 경영성과를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동시에 경영 전반에서 조직 구성원 전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효율적인 경영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조직운영 구조와 제도와 절차 및 일련의 경영관리 과정을 체계화하여 경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경영의 대표주자는 삼성이다.

◆시스템경영의 원조 '삼성'

'삼성은 시스템에 의해서 성장한 그룹'이라는 말에 대해 재계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기업은 없다.

지난해와 올해까지 이건희 회장의 6개월간의 해외 장기체류에도 불구하고 그룹 전체에 특별한 변동없이 경영현안이 추진 됐고 주력 계열사들의 지난해와 올 1사분기 실적도 나빠지기는 커녕 오히려 최대실적을 쏟아냈다.

당시 회장 부재시에 계열사 CEO들이 매주 태평로 삼성 본관에 보여 구조본부 회의를 통해 그룹 현안을 결정해 나갔고, 중요한 경영현안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이학수 구조본부장이 핫라인을 통해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 됐다.

결국 경영 전반에 대한 모든 결정은 전문경영인을 통해서 이뤄지면서 삼성에 불어닥친 위기를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삼성의 시스템 경영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때부터 시작됐다. 지난 1980년대 중반 이병철 회장은 비서실 인사 담당 상무에게 "GE나 IBM 같은 미국의 초일류 회사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보고 오라"는 특명을 지시했다.

이 임원은 1년 넘게 이들 기업의 전 세계사업장을 돌면서 삼성에서 갖고 있지 않는 '그 무엇'을 찾느라 애를 썼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조직을 움직이는 힘'인 시스템 경영이었다. 일류기업일수록 직원들의 자발적인 열정과 헌신을 잘 이끌어 냈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비결이 시스템 경영이라는 것이다.

즉 총수가 이래라 저래라 하기보다는 조직이 합의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시스템 경영이다. 인사, 평가, 예산 각 분야에서 합리적인 약속에 따라 경영이 이뤄지게 된다.

기업에서 시스템 경영을 도입하게 되면 A그룹 오너처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임원을 그 자리에서 해임했다고 붙여진 '엘리베이터' 인사나 1년에 수십차례 인사가 이뤄져 해당임원들을 놀라게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깜짝'인사와 같은 사례는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이병철 회장은 임원의 보고를 받고 바로 글로벌 기업의 시스템 경영을 국내 상황에 접목시킬 것을 지시했고 이건희 회장에 의해서 현재의 '삼성식' 시스템경영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동부그룹 벤치마킹위해 삼성 인사 수혈

삼성 다음으로 시스템 경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그룹이 동부다. 김준기 회장은 동부가 살길은 오직 시스템 경영밖에 없다라는 확신으로 수십명의 삼성출신 인사들을 지속적으로 영입을 해왔다. 삼성의 피를 동부로 수혈해서 시스템경영을 확산시키기 위함이었다.

김준기 회장이 영입한 인사가운데는 과거 이병철 회장의 특명을 받아 시스템 경영을 한국에 도입시킨 삼성비서실 인사당당 상무였던 이명환 동부 부회장도 있다. 이 부회장은 계열사 실적평가·급여보상 시스템·CEO 평가 등을 손보면서 동부의 시스템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한전선그룹 오너 부재 시스템으로 극복

대한전선그룹도 시스템경영 도입에 적극적이다. 고 설원량 회장의 갑작스런 부고에 따른 경영공백을 바로 시스템경영으로 잘 메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6개 계열사를 통합관리하려면 시스템이 뒤따라주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망인 양귀애 고문의 생각이었다.

특히 그룹 회장이 없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시스템경영을 약간 변형시켜서 미망인인 양귀애 고문과 전문경영인의 임종욱 사장의 쌍두마차체로 움직이고 있다.

임종욱 사장은 계열사 경영실적도 챙겨야 하고, 실적평가도 주요 업무다. 마치 그룹 총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중요한 현안에 대해선 양귀애 고문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소유와 경영에 대한 중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양귀애 고문은 경영에 일일이 간섭을 하지 않는다. 지난해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도 양귀애 고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임종욱 사장이 소신껏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에 부는 시스템경영 바람을 두고 일부에선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재벌기업 특성상 오너 경영을 뿌리째 뽑아 내기는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시스템 경영을 국내의 재벌기업의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한국식' 시스템경영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LS그룹, 한국식 시스템경영 토착화 노력

지난해 LG와 계열 분리한 LS그룹도 형태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식' 시스템경영을 실험하고 있다.

LS그룹의 경우 구자홍 회장이 그룹을 총괄하고 있지만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다른 총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계열사 경영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고 주력기업인 LS전선과 LS산전의 이사회 의장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구 회장은 개별 사업에 일일이 간여하기보다는 그룹의 비전을 세우는데 주력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느슨한 그룹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형제와 사촌 등의 7명의 지분구조가 균형 있게 배분되어 있기 때문. 어느 한쪽에도 치우쳐 있지 않는 지분 구조 덕에 형제·사촌간의 견제가 가능하고 각각 제 몫을 철저하게 배분 받아 책임경영을 펼칠 수밖에 없다.

전문경영인 체제의 시스템 경영과는 조금 다른 형태이기는 하지만 총수 1인 독단의 의사 결정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에선 이처럼 한국식 토종 시스템경영 도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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