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암호를 가진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한지운 산업부장

입력 2014-02-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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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6년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 모의 혐의로 법정에 섰다. 20년 전 메리가 잉글랜드로 도주해 온 이후, 그녀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눈엣가시였다. 메리는 헨리 7세의 딸 마거릿 튜더의 자손이었고 가톨릭 교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잉글랜드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배경이 충분했던 것.

법정 판결의 핵심은 가톨릭 교인인 앤터니 배빙턴과 주고받은 암호 편지의 해독에 달려 있었다. 그녀와 배빙턴이 주고받은 편지는 알 수 없는 단어가 빼곡히 나열된 암호문으로 작성되어 있었지만, 결국 암호는 풀렸고 그녀는 형장에서 두 번의 도끼질을 목덜미로 고스란히 받으며 이슬로 사라졌다.

정보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암호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배신과 음모가 난무했던 중세시대, 군주와 왕조를 둘러싼 정쟁(政爭)의 승패는 정보를 얼마나 지킬 수 있냐에 달려 있었고 결국 암호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암호가 지켜지느냐, 아니면 깨지느냐는 국가와 인류의 역사를 수없이 좌우해왔다. ‘코드북(The Code Book)’의 저자 사이먼 싱은 인류의 역사를 “암호 해독가와 암호 제작가의 끝없는 싸움”으로 정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성의 암호 해독반은 당시 가장 강력한 암호로 평가받던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은 독일이 멕시코에게 보낸 ‘미국에 빼앗긴 땅을 찾는 데 적극 협력하겠다’라는 전신을 가로채 참전을 고민하던 미국에게 전달했다. 이에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게 됐고 독일의 패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은 나바호(Navajo) 인디언으로 구성된 400여명의 암호병을 투입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의 암호 해독병들은 나바호 언어를 전혀 풀어내지 못했고 미국은 원활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암호가 과거 정치적,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었다면, 현재는 일상생활 전반에 너무나도 널리 적용되고 있다. 정보화가 고도로 진행된 현재, 암호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통신, 뱅킹, 쇼핑 등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든 전 산업 분야의 필수적 요소로 자리잡았다. 개인의 정보는 곧 개인, 그 자체가 됐다. 암호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국내 주요 카드사들의 개인정보 유출이 엄청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유출된 정보는 무려 1억400만건. 역대 전 세계 정보유출 사고 중 세 번째에 달한다. 한국의 개인정보는 이미 공공재라는 우스갯말은 이제 현실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온라인, 모바일화가 가장 빠른 국가다. 다른 국가에 비해 통신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면서 가장 먼저 관련 서비스를 도입했고, 일상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는 가장 먼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사회적 요청으로 인해 해법도 가장 빨리 내놓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이제 기업 자율과 책임을 넘어 정부가 직접 나설 때다.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는 면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국가 차원에서 개인정보 관련 솔루션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기업에게 질타와 제재만으로 끝날 때는 이미 지났다. 지난 2008년 옥션 웹서버 해킹으로 1863만명, 2011년 네이트 해킹으로 3500만명, 2012년 KT 이동전화 870만명의 고객정보가 유출됐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투입되는 재원은 국가와 함께 개인정보를 중심으로 사업활동을 하는 사업자들이 공동으로 마련하면 될 일이다. 비용을 물린다면 기업의 과도한 개인정보 요구와 집중화도 막을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징벌적 과징금도 국가가 꿀꺽하기보다는 사고 방지 마련을 위한 재원으로 고스란히 재투자돼야 한다.

물리적 솔루션이 절반이라면, 정보 접근과 처리에 대한 법적 규정을 명확히 확립해 ‘종합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남겨진 절반이다. 대부분의 유출 사고는 내부 정보 접근자들이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일어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테스트베드에서 만들어지고 적용·검증된 국가 차원의 정보보안 시스템은 전 세계적인 스탠더드로 확립될 수 있다. 정보를 보호하는 암호를 가진 자는 세계를 지배했다. 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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