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현장을 가다]샘표 ‘육포 질러’ 영동공장…원료육 손질 체력·위생과의 싸움

입력 2013-12-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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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김정유 기자가 지난 5일 충북 영동군 용산면 가곡리 샘표식품 육포 영동공장에서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계량기가 자동으로 50g씩 정량을 맞춰 육포를 분배하고 있다. 방인권 기자 bink7119@

‘철퍽’. 30cm 길이의 육포 원료육(肉)의 지방을 사정없이 칼로 내리쳤다. 질긴 지방이 엉겨 붙어 잘 떼어지지 않는다. 힘만 잔뜩 들어가면서 애꿎은 오른쪽 어깨는 아래로 처지고, 차가운 원료육을 잡은 손도 점점 감각이 무뎌진다. “아이고” 신음이 입가에서 절로 나온다.

술안주로 먹기만 했던 육포. 직접 만든다는 생각에 의욕이 넘쳤지만 ‘헛방(헛손질)’이 대부분이다. 급기야 옆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힐끔거리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오늘 하루 쉽지 않겠구나 ’란 생각에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이곳은 바로 충북 영동군에 있는 샘표식품 ‘육포 질러’ 공장이다.

▲김정유 기자가 일일체험을 하기에 앞서 에어샤워를 하고 있다. 방인권 기자 bink7119@
◇‘화장실’없는 공장… 위생복 입는 데만 ‘땀 뻘뻘’= “점심 먹을 때까지 2~3시간 동안 화장실 못 갈 겁니다. 미리 준비해두세요.”

오전 10시. 작업을 앞두고 영동공장 사무실에서 만난 하상우 영동생산2팀장이 꺼낸 첫 마디다. 화장실을 가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는 의미일까. 곧바로 되물었더니 “우리 육포공장엔 화장실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가막힐 노릇이다.

공장 내부로 들어가니 이해가 갔다. 영동공장은 일반구역, 준청결구역, 청결구역 등 총 3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구역별로 위생복을 따로 갖춰 입어야 한다. 구역 간 바로 진입이 불가능한데다 화장실 때문에 위생복을 벗고 입을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

하 팀장의 설명에 따라 직접 두 번에 걸쳐 위생복, 위생모, 마스크 등 모든 복장을 갖추고 손 소독까지 마치는 데 15분이 넘게 걸렸다. 입는 과정도 꽤 힘들어 착용에서부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측은했던지 옆에서 지켜보던 하 팀장이 격려(?)의 한마디를 던졌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위생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특히 곰팡이에 취약한 육포는 더욱 위생에 신경써야 합니다.”

▲김정유 기자가 육포 원료육을 손에 들고 지방만 떼어내는 정선작업을 하고 있다. 방인권 기자 bink7119@
◇원료육 손질, 서투른 칼질에 ‘허둥지둥’= 칼 한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처음 맡은 일은 육포의 원료인 소고기 홍두깨살 덩어리에서 지방을 떼내는 작업이다. 하 팀장은 “지방을 없애면 육포 맛도 담백해지고 일부 하얗게 변색돼 곰팡이로 오인받는 일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산 원료육 한 덩이를 힘껏 집어들었다. 그러나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방만 도려내야 하는데 살코기 부분도 함께 떨어져나갔다. “육포가 되는 살코기까지 이렇게 많이 자르면 안돼요!” 옆에 있던 직원으로부터 이내 핀잔을 들었다. 잔뜩 긴장한 채 잘해보려 애를 썼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영동공장에서 쓰는 원료육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수입한다. 뉴질랜드산은 지방이 제거된 상태에서 수입돼 따로 손질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호주산은 대부분이 지방으로 덮혀 있어 일일이 수작업으로 떼어줘야 한다. 떼어내는 양도 만만치 않다. 하 팀장은 “평균 원료육의 14%가 지방으로 떨어져 나간다”고 설명했다.

한참을 원료육과 씨름한 뒤 기자는 고기 핏물을 빼는 일에 투입됐다. 육포의 잡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이다. 1단계로 기계를 통해 핏물을 뺀 후 수작업으로 마지막까지 짜내는 것이 임무다. 육안으로는 상당히 비위가 상하는 작업이지만 생각보다 피 냄새는 많이 나지 않았다.

한 직원이 시범을 보이며 “바구니 속에서 시계 방향으로 고기를 옮기면서 핏물을 빼면 쉽게 잘 된다”고 조언했다. 말처럼 쉬울까. 물 먹은 고기를 수차례 들어 올리면서 두 어깨와 허리는 점점 시큰거렸다. 하지만 육포의 맛을 좌우할 수 있는 작업이기에 허투루 할 수 없다. 하 팀장은 “대부분 기계화 과정으로 되어 있지만 수작업을 해야 하는 과정도 꽤 있다”며 “한번 체험하신 분들은 왜 육포 가격이 비싼지 이해한다”고 웃었다.

▲김정유 기자가 육포가 될 고기들을 건조대에 가지런히 걸고 있다. 방인권 기자 bink7119@
◇끝 없는 위생과의 싸움 = 핏물 빼기에 이어 육포 건조를 위해 고기를 하나하나 고리에 거는 작업을 진행했다. 보기보다 쉬울 것 같아 바로 달려가려 했지만 하 팀장이 급히 제지했다. 해당 작업에 맞는 위생복으로 또 다시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 부랴부랴 앞치마와 팔토시, 장갑 등을 새로 착용했다.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농담 반, 진담 반에 하 팀장은 “HACCP(위해요소집중관리) 인증, SQF2000(국제 식품안전시스템) 인증을 받은 사업장인 만큼 관련 위생규칙 준수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복장을 갖추고 한 무리의 아주머니 직원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작업에 임했다. 기자가 작업한 염지(양념 숙성) 고기들 상당수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리에서 찢어지는 불상사가 이어졌다. 같이 조를 이룬 한 직원은 “고기의 튼튼한 부분을 고리에 걸고 손으로 잡아내려 주는 것이 포인트”라고 귀띔했다.

직원들의 숙련된 손 놀림에 고기들은 순식간에 고리에 걸려 건조대로 이동됐다. 보고 있자니 TV방송으로 봤던 ‘생활의 달인’이 따로 없다. 굼뜬 손을 최대한 움직이며 속도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천천히 해도 되니 정확하게 하라”는 아주머니의 상냥한 말도 자꾸만 밀리는 작업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육포 생산공장 일일사원 근무를 마치고 스스로 하루 동안의 근무 성적을 평가해 봤다. 아무리 후한 점수를 주려 해도 ‘50점’. 하지만 식품업체의 위생관리 시스템과 이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함께 체험 과정을 도운 하 팀장은 “이렇게 위생관리를 해도 문제는 또 생기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사실 곰팡이 등 각종 위생문제를 100% 방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식품업체라면 위생관리에 더욱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억울한 부분도 생기지만 모두 식품업체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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