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철·이완배 공저 ‘김재익 평전’은 5공화국 초기에 경제 정책을 주도했던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지만 현재 우리의 문제에도 큰 시사점을 던지는 책이다.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크게 업그레이드한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맞을 때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1987~1996년까지 한국경제는 연평균 8.3%의 성장을 계속한다. 좋은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이 활짝 개화한 시기였다. 개방과 안정이란 정책 방향을 정하고 이를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이 이뤄진 시기였다. 이 같은 그랜드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인물이 김재익 전 경제수석이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저성장의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등장하는 정권마다 가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들을 내놓지만 한 정권이 퇴장할 무렵이면 엄청난 부채와 저성장의 부담을 안겨놓고 떠나길 반복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이란 과제다. 이 때문에 당시 누가 어떤 방법을 통해 어떤 목표를 추구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책 입안자의 머리를 장악하는 것은 경제 사상과 이념이다. 사상과 이념은 오랜 시간을 걸쳐 세월의 연단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이 책을 다양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지만 나는 김재익 전 수석에 영향을 끼쳤던 미제스란 경제 사상가에게 눈길을 주게 된다. 반인플레이션과 개방 그리고 경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오스트리아학파의 선두주자 미제스의 사상적 토대 위에서 김 전 수석은 자신의 뜻을 펼쳤다. 그의 행동을 이끌었던 경제철학은 자유주의 사상이었다.
사람들은 그 시절과 우리의 시대가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현재 우리의 문제도 결국 건강한 경제사상의 부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상이 부재하니 결국 나오는 것은 임기응변식 정책뿐이다.
누적되는 부채, 떨어지는 역동성, 저성장으로 인한 취업난 등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올바른 사상의 복원과 실행에 그 해답이 있다. 상황에 맞춰 실용을 중시하는 정책은 이도저도 아닌 엉성하게 조합된 정책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뚜렷한 경제철학 위에 시행되는 정책이라면 단기적 성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고 장단기 효과를 모두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재익 전 수석은 확고한 사상적 토대 위에 자신의 신념을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30여년의 간격을 두고 우리는 그 시대로부터 풍성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올바른 경제철학과 관점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이런 교훈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