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채동욱 파문, 진영논리 안 된다

입력 2013-09-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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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 어디선가 기획한 냄새가 난다. 의심을 받는 쪽은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정황상 어쩔 수 없다. 청와대와 검찰이 불편한 관계에 있는 상황이었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바뀌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날아갈 것이란 이야기도 돌던 터였다. 심히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 사건도 어느 순간 진영논리의 덫에 갇히고 있다. 기획의 냄새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

소위 진보 쪽에서는 채동욱 총장을 검찰의 독립을 지키려다 희생된 ‘의인’으로 본다. ‘의인’인 만큼 다른 모든 문제는 다 용서된다. 의심할 수 있는 공직 윤리의 문제나 사건 전개과정에서 드러난 잘못된 검찰 문화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 버린다.

그럴수록 보수 쪽은 시종 싸늘하다. 진동하는 ‘기획’의 냄새에도 코를 막아 버린다. 제기된 의혹을 기정사실인 양 받아들이는가 하면 법무장관의 감찰 지시가 있은 후 사표를 낸 것을 두고도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그런 것이라고 몰아붙인다.

결국 이런 진영논리 속에 검찰을 검찰답게 만들기 위해 물어야 할 많은 질문들이 파묻히고 있다. 국민을 위해서도, 검찰의 미래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 아니다.

먼저 진보 진영에 하나 물어보자. 채 총장은 의혹을 받을 아무 이유가 없나? 그의 말대로 혼외 아들 문제는 아니라고 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잘나가는 검사 이름을 아무나 아이 아버지 이름으로 도용하겠나. 최소한 그 정도는 겁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관계라는 뜻 아니겠나. 그것만으로도 공무원의 품위 유지 의무 등 여러 가지를 물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기획’에 의해 제기된 문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정당화되거나 덮고 넘어갈 수 없다. 공직윤리는 그 자체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료조직의 윤리적 건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냥 넘어갈 경우 그 건강성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라.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설령 ‘의인’으로 규정한다고 해도 이 문제는 이 문제대로 따져야 한다.

또 하나, 법무장관의 감찰 지시에 대한 반발이다. 공공조직에 있어 상급 기관의 통제나 외부통제는 필수적이다. 검찰이라 하여 특별할 이유가 없다. 검찰의 독립성도 수사상의 독립을 말하는 것이지 공직 윤리나 공직기강에 있어서까지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 초유의 일이라는데, 이것은 그만큼 검찰이 특권을 누렸다는 뜻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껏 누렸으니 앞으로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일의 시작이 어디였건, 또 그 의도가 무엇이었건 그렇다.

반대의 논리도 이해할 수 없다. 검찰 내 감찰조직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표를 던지고 나가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어차피 혼외 아들 여부를 밝힐 수도 없는데 감찰은 왜 하느냐 따지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감찰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상급 기관의 감찰을 용납하지 못할 정도의 특권의식, ‘호위무사’ 운운하며 사표를 던지는 검사가 있을 정도의 불분명한 공사 구분 등 이런 검찰 문화를 그대로 두고 독립성 이야기와 ‘의인’ 이야기만 해서 되겠나. 검찰의 독립성은 검찰 문화의 건전성과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진영논리에 빠져 따져야 할 것을 제대로 따지지 못하면 언젠가 스스로 그 덫에 걸리게 된다.

보수 쪽에도 짧게 한 마디만 하자. 진동하는 냄새에 코를 막지 마라. 감사원장이 날아가고 이번에는 검찰총장이 날아가고 있다. 코를 열고 그 냄새의 진원지가 어디며, 왜 그런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라.

세월이 변했다. 감사원이든 검찰이든 손에 넣고자 해서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잠시 재미를 볼 수는 있어도 결코 오래 쥐고 있지는 못한다. 문제는 국민의 마음이다. 합리적 개혁을 통해서만이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고, 그럼으로써 이들 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다. 무엇을 손에서 놓고 무엇을 잡아야 하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진영논리, 그 백해무익의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진흙탕 싸움은 계속되고 물어야 할 질문은 뒤로 가고 있다. 한가위를 앞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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