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어느 부자의 꿈과 죽음

입력 2013-08-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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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부자 한 사람이 있었다. 공고를 졸업한 후 염색기술자로 일했고, 그 경험을 살려 섬유회사를 차려 성공을 했다. 한때는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이 그의 회사에서 짜거나 염색한 실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한다. 그 정도의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늘 인색했다. 비싼 옷, 비싼 음식을 찾아다니지도 않았고, 비싼 물건을 몸에 지니지도 않았다. 나무 심고 꽃 가꾸고, 그러다 친구들과 고스톱 한 판 치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이나 옳은 일을 하며 고생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돈도 마음도 거침없이 내밀었다.

편법도 몰랐다. 비자금을 조성할 줄도 몰랐고 청탁성 밥 한 그릇 사는 법도 없었다. 충주에 있는 그의 골프장만 해도 수도권의 잘나가는 골프장을 다 재치고 납세 순위에 있어서는 언제나 최상위권이었다.

강금원,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정치인 노무현을 찾은 것은 1990년대 후반. 법정한도였던 5000만원의 후원금을 들고 특별한 인연도 없는 정치인 노무현을 스스로 찾아갔다. 그를 대신할 꿈과 열정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 뒤 그는 늘 대통령 노무현 뒤에 있었다.

그렇게 후원을 하고도 집권 후에는 오히려 사업을 줄였다. 골프장 이외의 사업은 사실상 거의 접다시피 했다. 그는 그것을 대통령을 후원한 사람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대통령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먹고살기 힘들면 대통령 팔아 사고를 치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사람이 줄잡아 스무 명 이상이 되었다.

그런 그가 두 번의 옥고를 치렀다. 한 번은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 불거진 대선자금 문제였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 그는 자신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있어 그는 단 한 번도 억울해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다시 구속되었다. 첫 번째와 달리 너무나 억울해했다. 법정에서도 자신이 왜 이 재판을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외쳤다.

주된 혐의는 횡령. 그가 사실상 100% 소유하고 있는 회사 A가 또 다른 자기 소유 회사 B에 돈을 빌려주었다. 그리고 이자까지 쳐서 다 돌려받았다. 결과적으로 서로 간의 채권·채무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사법당국은 이를 횡령이라고 했다. 계산법도 고약했다. 10억원씩 열 번 빌려줬다 받은 것을 100억원 횡령이라고 하는 식이었다.

구속될 당시 그의 뇌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서울대학병원을 비롯해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병원들이 구속이 불가함을 설명하고 탄원했다. 그러나 그는 구속되었고, 이후 옥살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였을까? 조사를 받으며, 또 감옥 안에서 종양은 크게 자라 버렸다. 가석방과 함께 손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고통스런 항암치료에 나중에는 의식불명. 결국 1년 전 이맘 때 후록스, 루드베키아 등 그가 좋아하던 꽃들이 활짝 핀 계절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너무나 아까운 나이였다.

평소 그에게 말했다. 부자일수록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가져야 한다고. 진보든 보수든 뜻 맞는 정치인을 사심 없이 후원하는 당신 같은 부자가 많아야 한다고. 또 있다.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자고. 제대로 가다 보면 언젠가, 또 어디선가 답하는 데가 있지 않겠냐고.

그러나 1주기를 맞은 지난주, 비에 젖은 그의 묘지 앞에서 다시 생각했다.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욕을 보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는 옳게 살자는 말도 죄가 된다. 멀쩡히 잘 살 수 있는 사람을 잡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말리지 못한 죄, 옳은 것을 옳다고 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다시 오는 물음. 어떻게 살 것인가? 특히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에게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라 할 것인가? 그를 희생시켰던 정치권이, 그리고 그의 죽음을 재촉했던 검찰과 법원이, 그리고 그의 죽음을 방관했던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한다.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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