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빨리’증후군과 된장- 김명주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국 회계결산과장

입력 2013-06-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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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집단적으로 빨리증후군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미덕의 기준은 과정이나 내용의 충실함이 아니라 얼마나 빨리 하느냐로 되었다. 결과를 빨리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대에 살다보니 우리는 즉흥적이고 일차원적 인간으로 바뀌고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며 감정의 변동 폭이 극심해져 가는 것 같다. 술을 마셔도 빨리 취해야 하기 때문에 폭탄주를 마셔야하며 웃자고 하는 말에 흥분하여 죽자고 달려들기도 한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국제전화 국가번호마저 빨리(+82)가 되어버렸을까? 빨리 살고 빨리 죽자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빨리증후군은 우리를 점점 더 조급하게 한다. 그 결과 우리 삶의 여유는 점점 줄어들고 마음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 처지가 빨리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조급한 마음은 많은 사람들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곤 한다. 마음이 조급하게 되면 과거는 망각되고 미래는 부정되어 현재에 갇혀버리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삶을 지탱해 주는 과거의 추억이나 미래의 희망은 잘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려면 문제 밖에서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데 현실에 급급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문제 안에 들어와 있고 때로는 내가 문제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빨리증후군은 사람들을 한쪽만 보게 만들며 반대쪽도 볼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치명적인 실수는 보이지 않는 쪽에서 생기고 적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쪽에서 공격해 오는 법이다.

거대하게 짜인 현대물질문명사회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계의 한 부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하지만 속도의 노예로, 기계의 한 부품으로 살아가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고 또한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일상이 짜증나고 답답할 때면 가끔씩 일탈도 해 보고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자. 매일 보는 똑 같은 사물도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보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정안 IC에서 세종청사로 가는 길은 산을 깎아서 만든 절개지가 많이 있다. 겨울에는 흰 눈이 덮여있어 잘 몰랐고 봄에는 인간에 의해 살갗이 벗겨진 상처처럼 보였는데 여름이 되니 그 절개지에 그야말로 총천연색의 야생화들이 그림처럼 피어 있다. 상처 난 산에서 흘린 피를 먹고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예쁘다.

이제 된장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요즘 우리 식탁은 온갖 조미료를 범벅한 비닐포장의 인스턴트식품이 평정해 버렸다. 먹는 순간에는 맛이 있으나 대부분 뒷맛이 개운하지 않고 텁텁하다. 삼겹살을 마늘과 함께 인스턴트 쌈장에 찍어먹으면 돼지고기 고유의 맛은 조미료가 들어간 쌈장 맛에 묻혀버리고 만다. 다 먹고 나면 삼겹살을 먹은 건지 쌈장을 먹은 건지 헷갈린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바로 어렸을 때 풋고추와 오이에 찍어 먹었던 된장이다. 돼지고기 고유의 맛도 살리면서 다 먹고 난 뒤에도 은은한 맛이 혀끝에 남아있는 순수한 그 된장 말이다.

된장이 좋은 이유는 어떠한 인공조미료도 섞지 않고 오로지 콩과 소금과 시간과 땀에 의해 맛이 난다는 점 때문이다. 기본에 가장 충실한 음식이며 그 어떤 속임수나 조급함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된장 하나에 삶의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과장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시골에 가서 갓 딴 신선한 풋고추를 시골 된장에 듬뿍 찍어 먹어보라. 아마 도시에서, 그리고 시간에서 벗어났다는 자유와 함께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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