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증권산업 발목잡는 ‘정치 CEO’- 강혁 부국장 겸 시장부장

입력 2013-04-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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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대기업 계열 증권사가 최근 모바일 거래 수수료를 내렸다. 지나치게 싼 수수료 때문에 증권사 경영이 엉망이 됐는데도 이처럼 무리수를 던진 이유는 그룹의 지시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그룹 위상에 걸맞지 않게 시장 장악력이 떨어지자 수수료 인하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질문을 해보자. 거의 무료에 가까운 정책을 쓰면서까지 고객 숫자를 늘리는 게 과연 합당한 판단일까. 아마 책임 있는 경영자라면 그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으로 가는 데 금융투자업계, 특히 증권업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증권사가 탄생해야 자본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고, 강한 경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둡다. 증권사 경영자마다 ‘투자은행으로 가자’ 고 외치고 있지만 한갓 구호에 그치고 만다.

증권업계가 제자리걸음을 걷는 이유 중 하나는 전문경영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사라지고, 그룹 회장 한마디에 자리에서 물러나다 보니 비전을 제시하는 게 불가능하다. “파리 목숨인데 뭘 할 수 있겠냐” 는 자조 섞인 얘기가 들리는 마당에 투자은행 운운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다.

증권사 경영자는 거쳐 가는 자리가 된 지 오래다. ‘정치 CEO’ 가 많다 보니 정권의 부침에 따라 뜨고 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 보니 물 먹었다가 화려하게 컴백하기도 하고,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가 임기도 못 채우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현재 잘 나가고 있는 몇몇 인사의 경우 불과 수년 전에 불명예 퇴진한 경험을 갖고 있다. 반대로 이전 정권에서 중용된 몇몇 인사들은 언제 윗선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증권가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던 이런저런 하마평이 무성하다. 하마평이 난무하면 해당 조직은 움직이질 않는다. 경영자가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 것이다.

그럼 언제까지 이런 인사의 악순환이 반복돼야 하는 것일까. 과거를 부정하는 인사문화가 되풀이되는 한 ‘한국의 골드만삭스’는 결코 나올 수 없다.

국내 증권사 CEO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2년 5개월 안팎에 불과한 반면 미국 대형 증권사 CEO들의 재임 기간은 8년이나 된다.

LG경제연구원이 국내 상장사를 대상으로 CEO 재임 기간과 경영 성과를 조사한 결과 재임 기간이 1년이 안 되는 기업의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6.0%, 10년 미만인 곳은 4.5%, 20년 미만은 2.9%, 20년 이상인 곳은 6.4%로 재임 기간과 실적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 신년사 2번만 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떠돌이 경영자’ 에게 무슨 성과를 기대하겠는가. 이들에게 비전은 애초부터 사치스런 단어다. 취임사에서는 “투자은행으로 가자”,“자산관리 시장을 선점하자” 등 각종 청사진을 제시하지만 부서 명칭 몇 번 교체하고 조직도 바꾸면 임기가 끝난다. 중장기 플랜을 갖고 인재를 영입하고 조직을 단련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짧은 임기 동안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질적 성장보다는 수수료나 낮춰 양적 성장을 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경영자 한마디에 어제까지 잘 나갔던 조직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하루아침에 없던 조직이 생기기도 한다. 이 와중에 조직원들은 철새처럼 이쪽 증권사, 저쪽 증권사 옮겨다니기도 한다.

증권업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후진적인 인사문화부터 고쳐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증권사가 되려면 자본확충도, 인재양성도, 정부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것들을 이끌어 나갈 전문적이고 책임 있는 경영자가 등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코드’와 ‘끈’이 지배하는 문화에서는 푼돈으로 먹고 사는 고만고만한 증권사밖에 될 수가 없다.

증권산업의 발전을 원하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뒷골목, 패거리 인사문화부터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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