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이사직을 회피하는 대기업 총수 일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경영의 의사 결정에 영향력 있는 역할을 고사하면서 외적인 수익만 추구할 뿐 실질적인 책임·윤리경영과는 괴리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사퇴하면서 총수 일가의 등기이사 활동 여부에 따른 민감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직 사퇴는 베이커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부당지원으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현재 상황을 면피하고자 하는 선택으로 논란의 중심에 올랐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46개 대기업 집단의 등기이사를 조사한 결과 총수 일가는 535명(9.2%)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다수의 총수 일가들이 정 부회장과 같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그룹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은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부진 사장만 호텔신라 등기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와는 반대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정의선 부회장과 함께 등기이사직을 유지했다. 허창수 GS회장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도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LS그룹 역시 구자엽 LS전선 부문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맡게 됐으며, 구자홍 LS그룹 회장도 LS산전 등기이사에 선임되면서 핵심 경영진이 포진한 이사회 시스템을 마련했다.
오너리스크로 기타 계열사들의 임원들이 등기이사를 맡게 된 경우도 눈에 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공백을 메우고자 조대식 SK 사장을 신임 사내이사로 선임키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영향력은 상당한 데 반해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 등재는 미약한 편”이라며 “이같은 현상은 본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을 빠져 나가려는 궁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상생이 시대적 화두로 자리잡으면서 대기업들의 이사회 결정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총수 일가가 포함된 이사회와 그렇지 않은 이사회의 의견 노선이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