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리얼리티 논란의 맨얼굴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3-02-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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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방송의 리얼리티라는 건 어느 정도까지의 진짜를 얘기하는 걸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의 대중은 알고 있다. 제 아무리 리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국은 TV라는 프레임 안에서 보여지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거기 보여지는 영상이 현실 그대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선별되어 찍혀진 것이고, 그렇게 찍어 온 영상들도 또 누군가에 의해 편집되고 연출되어 스토리텔링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중은 알고 있다. 방송 리얼리티가 100%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SBS‘정글의 법칙’ 리얼리티 논란은 왜 벌어진 것일까. 그것이 진짜 조작이라서? 아무나 다 갈 수 있는 관광 상품으로도 있는 루트를 오지로 포장하고, 사실은 돈 주면 마치 연기자들처럼 연기를 해주는 원주민들을 사나운 원시부족으로 연출하며, 매번 쫄쫄 굶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이동하는 와중에 호텔에서 머물며 맥주파티를 하기도 하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정말 그것 때문일까.

보여지는 것과 찍는 과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방송의 공공연한 사실이 아닌가. 관광 상품에 있는 루트라고 해도(사실 전 세계 어느 오지라도 관광 상품이 없는 건 없다. 어마어마한 자본의 위력 덕택에!)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섭외된 원주민이라고 해도 그 목적이 그들의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다르며, 이동 중 호텔에서 조촐한 파티를 갖는 것이 고생하는 출연진들과 제작진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면? 사실 이런 건 다 이해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제는 수도 없이 나와서 조금은 구닥다리 논란이 되어버린 리얼리티 논란이 유독 ‘정글의 법칙’에서 폭발한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리얼리티 그 자체보다 ‘정글의 법칙’을 바라보는 대중의 남다른 정서가 깔려 있다. 대중들은 ‘정글의 법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그 폭발적인 논란의 이유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인 셈이다. 정글이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들에게 던져주는 이미지는 오지라는 낯선 환경과 함께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과 서바이벌이다. 즉 ‘정글의 법칙’이 그토록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먼 오지에서 살아남는 병만족을 볼 수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거기서 우리네 현실 또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타의 해외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달리 ‘정글의 법칙’이 병만족이라고 하는 유사 가족을 꾸린 데는 우리네 정서가 작용한 면이 있다. 김병만이라는 가장이 정글에서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집을 짓고 먹거리를 찾는 과정과 그 힘든 환경 속에서도 보여지는 끈끈한 가족애와 형제애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무한 경쟁이라는 정글에 내몰려진 우리네 가장과 가족들의 현실을 그대로 환기시킨다. 서구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정글의 법칙’은 가족과 자연(원주민을 포함한)과의 ‘공존’에 더 의미를 둔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쩌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정글의 법칙’만이 가진 진일보한 면이기도 하다.

결국 ‘정글의 법칙’ 논란이 생겨난 지점은 그것이 리얼이냐 아니냐의 진실의 문제보다는 그것을 리얼로 바라보고 그만큼의 똑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픈 제작자와 대중의 욕구가 외적인 폭로에 의해 깨져버리면서 생겨난 일종의 허탈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거기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곤 했던 병만족이 사실은 편안하게 오지 관광 상품을 즐겼을 거라는 추정(이것은 진짜 추측일 뿐이다. 실제로 병만족은 어떤 방송보다 힘겨운 촬영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이 어떤 배신감을 불러오는 이유다. 즉 현실의 정글에서 아슬아슬한 생존의 서바이벌을 하고 살아가는 대중들과 달리, 정글 속에서조차 고생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 돈을 벌고 살고 있다는 빗나간 추측. 마치 거지 역할로 스타가 된 개그맨이 외제차를 타고 가는 것을 봤을 때 느껴지는 부조화.

하지만 김병만을 위시한 병만족은 대중을 속인 적이 없다. 그들은 정글이라는 환경 자체가 주는 것처럼, 국내에서 했던 그 어느 예능 프로그램보다 고생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짝 드러난 리얼리티의 맨얼굴을 보고는 대중들이 엄청난 허탈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래서 이 방송의 정반대에 놓여져 있는 우리네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극단의 허탈감은 리얼리티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대중들이 지금 현재 얼마나 지독스러운 생존경쟁에 내몰려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역시 방송으로서의 리얼리티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100% 진짜일 것이라 스스로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때로는 대중문화에 벌어지는 많은 과장된 논란들은 이렇게 거꾸로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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