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태성 국제경제부장 “독일·프랑스의 유로존 업보”

입력 2012-11-23 10:48 수정 2012-11-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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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유로화 출범에 가장 애가 탔던 나라는 프랑스였다.

1989년 12월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유럽 단일통화 도입과 독일 통일을 위한 담판에 나섰다.

먼저 손을 뻗은 쪽은 독일이었다.

통일을 추진하던 독일에게 프랑스의 동의는 필수였다. 굳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웃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전쟁과 화해의 역사를 지속한 애증의 관계였다.

프랑스에게 독일 통일이 반가울리 없었다. 2차 대전에서 패한 후 갈라졌던 서독과 동독이 다시 합친다는 것은 프랑스 입장에서 독일제국의 재부상으로 볼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콜은 미테랑에게 단일통화 도입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했다. 조건은 통독에 대한 지지였다.

단일통화 도입을 주도하며 유럽에서 잃었던 영향력을 되찾으려던 프랑스 입장에서 이같은 독일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두 사람의 합의 이후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유로화 출범 작업은 바람에 돛 단 듯 순항했다.

불과 2년 뒤에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유럽연합(EU) 출범과 유로화 도입 일정이 구체화했다.

20~30여년에 걸쳐 지지부진했던 유로화 도입 이슈가 두 사람을 통해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당시 콜과 미테랑에게 유로화가 재정통합이 없는 공동통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그리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실투성이였던 유로존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들어나게 된다.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으면 안됐다.

그리스는 겉으로는 이같은 조건을 총족했지만 안으로는 곪을대로 곪아있었다.

그리스는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국방비와 의료비를 누락시키는 등 회계를 조작했다. 국가판 분식회계였던 것이다.

그리스는 나아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국채가치를 조작하는 ‘사기’까지 쳤다.

최근 독일 언론에 따르면 유로존 당국은 이를 알고 있었지만 묵인했다. 그리스를 내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다시 독일과 프랑스가 나섰다.

당시 독일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자크 시라크는 자격미달에도 불구하고 통화동맹의 성공을 위해 그리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분식회계를 이유로 유로존에서 그리스를 방출할 경우, 전체 회원국의 자격은 물론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폭탄은 머지 않아 터졌다. 2009년 말 그리스의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면서 유럽은 재정위기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리스를 비롯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이른바 ‘유럽의 돼지들’의 국가신용등급은 줄줄이 강등됐고 상당 수의 국가들이 구제금융을 받는 치욕을 겪었다.

유로존의 업보는 이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지게 됐다.

그러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칫 유로존이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밀실에서의 합의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이는 유럽연합(EU) 정상회담과 유로존 재무장관 회담 등이 잇따라 난항을 겪고 있는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여년 전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암묵적인 합의만으로 문제를 덮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일부 국가의 이해타산만을 따졌다가는 ‘유로존의 붕괴’라는 재앙이 현실화할 수 있다.

문제는 각기 상황이 다른 17국이 위기 해결을 위해 단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먹구름은 프랑스에도 짙게 드리우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9일 프랑스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수준인 ‘Aaa’에서 ‘Aa1’으로 강등했다.

무디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가 최고등급을 상실하면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로안정화기구(ESM) 등 유럽구제기금에 대해서도 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프랑스를 ‘유럽 심장의 시한폭탄’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독일의 신용등급 역시 위험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독일마저 강등된다면 겨우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가던 유럽 재정위기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했던가.

유로존의 출발과 함께 한 원죄는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그 목적지는 바로 독일과 프랑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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