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약 안전지대' 아니다]재범률 절반 육박하는데…치료·재활교육은 고작 5%

입력 2012-07-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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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 사후 관리 '낙제점'

# 30대에 대마초에 중독됐던 40대 중반의 남성 김모씨는 혹여 다시 대마초가 피고싶을까 지난 10년간 담배조차 입에 안댔다. 스스로도 금단증상을 잘 극복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터였다. 하지만 어느날 인천으로 출장을 간 김씨는 10년전 마약을 했던 모텔을 우연히 지나치게 됐다. 그 순간 그에게 마약에 대한 유혹이 업습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당시 대마초 공급상을 수소문했고, 결국 다시 무서운 마약중독의 늪에 빠지게 됐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 보고된 이 사례는 단약(斷藥)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죽을 때까지 마약에 손을 대지 않아야 비로소 마약을 끊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마약의 중독성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향정신성 의약사범의 재범률이 45%에 이른다는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어찌보면 개인의 ‘의지 밖 영역’인 마약중독은 반드시 치료 등 후속조치가 병행돼야 범죄자 양산을 줄일 수 있다. 더욱이 중독자의 99.9%가 중독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인 스스로 치료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늦다. 마약중독 치료에 있어 ‘강제성’은 필수불가결한 요건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마약중독자 사후관리 점수는 낙제점 수준이다. 마약 사범을 잡아들이기 바쁜 나머지 이들의 사회복귀를 도울 수 있는 치료와 재활에는 무관심할 뿐이다.

◇마약 투약사범 치료율 5%…전문치료병원은 개점휴업 = 실제 우리나라 마약 사범 가운데 투약사범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치료보호나 재활교육을 받고 있는 이들은 극히 적은 실정이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마약류를 투약·유통·재배했다가 적발된 전체 마약사범은 연 평균 9216명. 이들 중 마약을 투약한 이들은 5994명으로 61%에 달했다. 하지만 투약사범 중 치료보호나 재활교육을 받은 사람은 266명으로 5%에 불과했다.

더욱 문제는 정작 투약사범들이 치료를 받고자 하더라도 그들을 받아줄 병원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부에서는 현재 전국 19개 병원을 마약류 중독 전문치료기관으로 지정해 놓고 있지만, 거의 유명무실하다.

우리나라 마약중독 치료의 90%를 담당해오던 국립부곡병원 부설 약물중독치료소마저 개점휴업상태다. 지난해 6월 내부사정으로 그나마 있던 전문의 한명이 병원을 떠난 후, 1년 넘게 후임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곳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약물중독자 전문병동(200병상)을 갖춘 곳이었다.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도 서울 당산에 송천재활센터를 열어 마약 중독자들의 재활을 지원해 왔지만, 이조차 지난해 입소자 15명 중 8명이 마약 재투약으로 입건되면서 폐쇄된 상태다. 사정이 이렇자 마약류 중독자 치료 보호기관을 이용한 사람도 2010년 231명에서 지난해 81명으로 뚝 떨어졌다.

또 마약 투약 초범일 경우엔 치료를 받겠다고 약속하면 법원에서 검사의 청구로 법원에서 치료감호를 선고받을 수 있다. 이후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인 ‘약물중독 재활센터’에서 전문적인 치료 및 재활교육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감호소에서도 별다른 치료프로그램 없이 단지 가둬놓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치료감호 대상자 조차 2008년 52명에서 2009년 33명, 지난해 9명으로 크게 줄어들고 있다.

◇사회적 편견도 마약 중독 치료·재활 걸림돌 = 정부는 2000년 7월부터 마약 중독자가 스스로 병원에 찾을 경우, 의사가 이를 검찰에 신고하는 의무 조항을 없애는 등 나름 마약류 중독자들이 자유롭게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마련했다. 그럼에도 100만명에 이르는 마약중독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재활을 받지 못한채 방치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주일경 원광디지털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중독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데다, 마약류 사범 또한 치료해야 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단속이나 격리수용의 대상으로 경향이 크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최소한의 치료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논의가 벌써 수년째 지속되고 있고, 관련법안도 제출됐지만 언제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라고 주 교수는 내다본다.

정부의 무관심도 문제지만 마약중독자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이들의 치료와 재활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약 중독자는 사회적 편견과 배척에 시달리다보니 외래환자로 민간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국립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립부곡병원 관계자는 “마약중독자는 기본적으로 범법자라는 인식 때문에 의사들이 진료를 꺼리는데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돼 보수도 일반 전문의의 3분의 1 수준이라 장기 근무자도 찾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전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마약중독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강제치료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조성남 을지대 중독연구소 소장은 “마약중독자들의 치료와 재활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치료보호 선고를 통한 기소유예제도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사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사업부장도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중독자들을 치료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치료와 재활을 연계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표> 마약투약사범 치료보호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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