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신포도는 어디에나 있다

입력 2012-04-30 09:27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정수봉 한전 과장

“배고픈 여우가 굶주린 배를 안고서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 길옆에는 포도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넝쿨 밑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들은 너무 높이 달려 있었다.

펄쩍펄쩍 뛰어보았지만 역부족, 아무리 해도 따먹을 수가 없었다.

이 여우도 루저(loser)였나?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무척이나 신포도(sour grapes)일 것이 분명해!’

내가 새로이 개발되는 신도시에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청약을 한 것은 작년 11월말이었다.

모델하우스를 방문해서 돌아보니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세련된 구조는 당장이라도 입주하고픈 충동을 느끼기에 충분한 흡입력을 갖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아파트는 국내 유수의 건설사에서 짓는 브랜드파워를 갖고 있었고, 입주시점에는 지하철도 연장, 개통되는 등 나름대로의 많은 장점을 갖추고 있어 어느 정도의 당첨프리미엄도 기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아파트였다.

또한 지금 살고 있는 집이 15년도 넘었거니와 용슬(容膝)조차 하기 힘든지라 망설이지 않고 청약을 했던 것이다.

청약신청 후 당첨자 발표일까지 거실은 어떻게 꾸밀 것이며, 한층 넓어질 것 같은 내방은 서재와 컴퍼넌트를 갖춰 지하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200여장도 더 되는 LP판에게 햇빛을 보게 해 주어야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좋으면 남들도 좋다던가?

수십대 1의 청약경쟁률은 애초에 나에게 당첨기회는 요원한 것이었나 보다.

당첨자 발표일, ARS를 통해 들려오는 낙첨소식에 나는 맥이 빠져버렸다.

그 때 애타게 당첨소식을 기다리던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당첨 안 됐어. 잘 됐지 뭐. 분양가도 너무 높고, 평당 1500만원이 뭐야? 지하철역도 10분은 더 걸어가야 되고...”

전화를 끊자 마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허청허청 걸어가는 여우와 내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자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2024 여의도 서울세계불꽃축제' 숨은 명당부터 사진 찍는 법 총정리 [그래픽 스토리]
  • "원영 공주님도 들었다고?"…올가을 트렌드, '스웨이드'의 재발견 [솔드아웃]
  • 단독 하마스 외교 수장 “이스라엘, 국제법 계속 위반하면 5차 중동전쟁”
  • 대기업도 못 피한 투심 냉각…그룹주 ETF 울상
  • 벼랑 끝에 선 ‘책임준공’… 부동산 신탁사 발목 잡나
  • 갈수록 높아지는 청약문턱···서울 청약당첨 합격선 60.4점, 강남권은 72점
  • 국제유가, 2년래 최대 폭 랠리…배럴당 200달러 vs. 폭락 갈림길
  • 황재균, 지연과 별거 끝에 합의 이혼…지연은 SNS 사진 삭제 '2년' 결혼의 끝
  • 오늘의 상승종목

  • 10.04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83,730,000
    • -0.23%
    • 이더리움
    • 3,266,000
    • +0.09%
    • 비트코인 캐시
    • 436,900
    • -0.3%
    • 리플
    • 717
    • -0.14%
    • 솔라나
    • 192,900
    • -0.16%
    • 에이다
    • 472
    • -1.05%
    • 이오스
    • 637
    • -1.09%
    • 트론
    • 208
    • -0.95%
    • 스텔라루멘
    • 124
    • -0.8%
    • 비트코인에스브이
    • 61,750
    • -0.24%
    • 체인링크
    • 15,290
    • +1.39%
    • 샌드박스
    • 341
    • -0.2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