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인하'허와 실] 명약? 독약?

입력 2012-03-29 08:11 수정 2012-03-2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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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일 6506개 약품 평균 14% 인하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D-3일이다. 건강보험적용 의약품의 47%인 6506개 품목의 약값이 평균 14% 인하되는 일괄약가인하가 예정대로 다음달 1일 단행된다. 제약업계 분위기는 그야말로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다. 체육관을 빌려 궐기대회까지 열며 강하게 반발하던 모습도 온데간데없다.

쥐가 고양이를 문 격의 제약사와 정부간 소송전도 일단 정부의 K.O 승으로 마무리되는 형국이다. 현재까지 단 4개의 중소제약사만이 복지부를 상대로 약가인하 취소소송을 제기하며 이미 ‘용두사미’로 전락했다. 복지부 눈치보기, 협회 이사장 선출을 둘러싼 내부갈등, 상위제약사의 실익 따지기 등이 변수였다. 사실상 소송 전에 뛰어들기도 전에 제약사 대부분이 백기를 든 셈이다.

지난주 제약협회가 일괄인하 취소 소장을 동시 접수하겠다는 카드까지 내밀었지만 제약업계 반응은 여전히 차가웠다. 제약협회에 따르면 소송 참여는 5월 말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소송의 의지가 한풀 꺾인 지금, 일부 중소 제약사를 제외하고는 추가로 소송에 참여할 업체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예견된 결과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제약사에게 보건복지부는 ‘슈퍼 갑(甲)’인 존재다. 약가결정, 인허가 등 의약품의 생산과 판매정책에 깊게 관여하는 보건복지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복지부의 공문 한 장으로 회사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 많은 제약사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제약사들은 옴짝달싹도 못하게 됐다. 복지부는 이번 약가인하로 1조7000억원의 약품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고스란히 제약업계 전체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증권가에 따르면 제약사별로 최대 20%가량의 매출이 줄어든다. 약가인하 피해규모가 큰 상위제약사들은 연간 700억원에서 1000억원 이상에 이를 전망이다.

이제 다수의 중상위 제약사들은 복지부의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 더 관심을 쏟는 분위기다. 정부가 직접 선정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큰데다, 향후 정부의 정책 방향이 혁신형 제약기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1000억원도 되지 않는 R&D 예산 규모에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으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라며 “기업 이미지 제고와 복지부와의 업무 관계에서 융통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혁신형 제약기업)에 선정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제약사들은 스스로 생존방안 마련에 분주해졌다. 당장 올해 상반기 내 매출 타격을 감내하지 못하는 일부 제약사들은 품목과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살 길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처방약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개선하고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의료기기 분야 진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괄약가인하는 ‘양날의 칼’의 모습을 띠고 있다. 소비자의 약값 부담이 줄어든 만큼 제약사들은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또 제약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옥석 가리기는 영세 제약사들의 인력구조조정으로 이어져 대규모 실업자를 양산하게 마련이다.

약가인하는 단기적으로 건보재정의 안정화와 약제비 지출 감소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소비자로서는 환영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약가인하로 제약산업이 위축되면 결국 의약주권을 상실하게 돼 국민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책의 전권을 가진 정부가 후진적인 제약산업을 선진화하겠다며 그 근간을 뒤흔들수록 제약업계 종사자들의 일자리와 생계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약가인하가 ‘양날의 검’이 아닌 일거양득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정책이 되려면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형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장은 “제도 변경이 의미가 있으려면 후속 대책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회성 대책에 그친다면 그 효과는 단시간 내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약가인하와 함께 저렴한 복제약 사용을 촉진하거나 과도한 의약품 복용을 막는 정책을 함께 도입한다면 국민부담은 줄이고 국내 제약산업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헌제 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도 “인구노령화, 만성질환자 증가 등으로 약의 사용량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를 늘리고 연구개발(R&D)과 생산 혁신활동을 통해 비효율성을 줄여 부가가치를 높여나간다면 약가인하로 인한 어려운 상황은 충분히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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