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영화 '건축학개론'과 소주 한잔의 상관관계

입력 2012-03-2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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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영화는 너무 뻔하다. 감정 호소에 무리하게 집착한 스토리 라인을 따르는 클리셰(전형성)가 주를 이룬다. 너무 많은 선례가 있기에 특정 작품을 꼬집어 얘기하기 힘들 정도다. 주로 시각적 설득력 보단 감정의 끝머리를 잡아채는 영화적 장치가 장면 및 스토리 전환의 동력을 대신한다.

두 번째는 공감대 이입을 통한 몰입 유도다. ‘사랑’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 감정은 이렇다. 누군가 얘기하면 귀 기울이게 되고,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내 얘기 인 것 같은 착각의 늪으로 이끈다. 가끔씩은 그 착각으로 가슴 한 편이 아련해지고 먹먹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 얘기는 사람들을 동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건축학개론’은 남자들에겐 ‘나도 그랬지’와 여자들에겐 ‘나도 저럴까’란 심연 속 감정의 끝자락을 낚시 바늘로 걸어 올리는 재주가 있다. 그 낚시 바늘 끝 미끼는 듣기에도 달콤한 ‘첫사랑’이다. 영화에서 첫사랑은 과거(이제훈)와 현재(엄태웅)의 승민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기억이자 추억이다. 기억이 단순히 현재의 흔적이라면 추억은 순수했던 과거다.

영화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 사랑이었다’는 카피로 모든 것을 말한다. 그렇다. 뻔한 얘기다. 첫 사랑. 예전 가슴 졸이며 발만 동동 구르던 옆집 철이의 순진함도, 긴 생머리에 뽀얀 피부를 자랑하던 여대생 영희의 기억도 모두 ‘첫사랑’이다. 그럼 15년이 지난 감정의 흐름도 과연 ‘첫사랑’으로 부를 수 있을까. 감독은 15년이란 간극 속 두 남녀의 모습을 통해 거부할 수 없는 바람의 간절함을 그린다.

그 간절함을 그리는 방법이 참으로 독특하다. 연출을 맡은 이용주 감독은 건축학도 출신답게 ‘건축’과 ‘사랑’을 하나의 코드로 연결했다. 켜켜이 쌓아 올리는 감정의 벽돌과 집을 짓기 위해 공간과 교감을 나누는 행위를 같은 감정의 연결 고리로 엮어 버렸다. 더욱이 현재와 과거의 동일 인물을 각기 다른 배우에게 맡겼다. 결국 스무 살의 가슴 설레는 첫사랑(과거)과 서른다섯 살의 너무도 현실적인 재회(현재)가 하나의 결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버렸다.

이 감독이 밝힌 “건축도 그 집의 주인이 될 사람을 알아야 시작할 수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닌가. 건축과 사랑에 대한 감정은 어딘지 닮아 있다”고 영화를 만든 이유를 전한다.

남성적 시각에서 ‘건축한개론’이 첫사랑 영화이면서도 참 괜찮은 그림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감독의 변’에 들어있다. 접근 방식의 차이가 기존 영화와는 분명히 다른 선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감독의 변’처럼 건축 그리고 승민(이제훈-엄태웅)과 서연(수지-한가인)의 관계가 맞물린 벽돌처럼 세밀한 교차점을 보일까.

영화 속 콘크리트의 냄새가 덜한 정릉 일대를 걸으며 건축학개론 숙제를 하는 승민과 서연의 모습이 오히려 현재의 서연이 승민을 찾아와 집을 건축해 달라는 것보다 더 ‘건축 = 사랑’이란 코드에 가깝게 여겨진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를 두 사람만의 약속된 공간으로 일궈 나가는 과거의 모습은 기억 속 첫사랑과의 경험을 고스란히 끄집어 낸 모습이었다.

그 뿐인가. 친구 납뜩이(조정석)에게 연애 상담을 하는 모습이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허둥대는 20세의 승민은 30대 남성들에겐 자아 투영의 경험 아닐까. 실연 뒤 납뜩이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또 어떤가. 모든 장면이 너무나 상투적이지만 또 너무도 이해할 수 없게 관객들을 납득시킨다.

반면 현재의 승민과 서연이 보이는 감정은 좀 더 복잡하다. 단순히 과거의 승민과 서연이 첫사랑의 설렘에 집중한다면 현재의 두 사람은 과거의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서연은 들춰내려 하지만 승민은 자꾸만 살아나는 과거의 감정을 떨치기 위해 애쓴다. 결국 감독은 과거의 설렘과 현재의 현실을 구분 짓기 위해 비교적 짧은 시간인 15년의 간극을 다른 배우들로 분리해 버렸다.

15년이란 시간은 과거의 승민이 홧김에 걷어찬 대문의 쭈그러짐을 힘으로 펴듯 억지로 살릴 순 있어도 온전히 되돌릴 순 없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의 결말은 뻔한 사랑얘기 임에도 결코 뻔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 영화가 누군가를 이토록 절실히 좋아했다고 말하는 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첫사랑의 아이콘’과 같은 한가인과 수지의 연기는 남성 관객들의 감정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영화를 본 뒤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는 남성 관객들의 감상평이 절대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기억 속 첫 사랑(수지)의 두근거림과 현재의 첫 사랑(한가인)으로 만나는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이 너무도 묘하다.

승민을 연기한 엄태웅과 이제훈의 연기도 딱 들어맞는다. 특히 ‘파수꾼’과 ‘고지전’에서 살기어린 눈빛을 발하던 이제훈은 ‘건축학개론’에선 순진함을 넘어 순둥이 그 자체다. 면바지에 흰 운동화 그리고 ‘짝퉁’ 티셔츠가 그렇게 잘 어울리는 배우가 대체 어디에 또 있을까.

‘불신지옥’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지난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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