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세상에 하나뿐인 수제종이

입력 2012-03-09 10:13 수정 2012-03-1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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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지식경제부 주무관

직장인이 되면서 자주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가끔씩 하는 나의 취미생활은 ‘종이 만들기’ 이다.

처음에 직접 종이를 만들 수 있다고 하기에, ‘그럼 내가 나무를 베어 와서 펄프를 만들고..??.’ 이렇게 어렵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폐지를 기본 재료로 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재생 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색을 내고, 원하는 재료를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종이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저 단순한 재생 종이는 아니다.

‘종이 만들기’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휴학 중에 고모가 살고 계시는 런던에서 몇 달간 지냈을 때이다.

고모 댁에서 빈둥빈둥 놀던 어느 날,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우연히 한 대학에서 단기과정으로 ‘Papermaking’ 수업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지만 말고 뭔가 배워보는 것이 어떠냐는 고모의 은근한 협박도 있었고, 나 역시 호기심이 들어서 강의를 덜컥 신청했다. ‘영어수업인데 못 알아듣고 막 헤매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몸으로 직접 하고, 눈으로 보고 따라하면 되는 실습수업이니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첫 수업에 참여했다.

‘Papermaking’과정이 대학 수업이기는 하지만 사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학교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일종의 사회교육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입학을 위한 특별한 자격도 필요 없고, 관광객으로서 짧게 머무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강의였다.

첫 수업 날, 긴장하며 교실에 들어가니 젊은 사람은 2~3명 뿐,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70세 정도 되신 백발의 할머니도 계셨음.)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의 시범을 따라 열심히 하는데, 슬쩍 주위를 보니까 이건 뭐. 완전 프로들이다. 집중해서 종이를 신중하게 뜨는 모습이 마치 장인의 손놀림이랄까. 그냥 취미라고 하기에는 다들 정말 열정을 가지고 하시는 것 같아, 왠지 멋져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직 디자이너 출신의 할머니도 있었다.)

선생님은 그저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조언 정도만 해 주실 뿐, 마음대로 만들도록 두신다. 대부분 몇 년씩 종이 만들기를 해 오신 분들이라 그런지 혼자서 이것저것 잘 하셨다. 물론 나처럼 초보인 몇몇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 따로 여러 가지 기법을 가르쳐 주시지만, 나머지 프로급 아주머니들은 알아서 작품을 만들어 간다. 중간에 간식시간도 있어 같이 모여 샌드위치도 먹는다.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라서 한 주 한 주 지나갈수록 긴장도 덜하게 되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수제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나는 영국에서 처음 접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센터나 책, 인터넷을 통해 쉽게 배워 따라해 볼 수 있다. 재료준비가 조금 귀찮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막상 해보면 다른 잡다한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고, 뭔가를 만든다는 성취감도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버려질 종이를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라 그런지 폐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아서 뿌듯한 느낌도 든다.

종이 만들기를 배우면서 생각나는 대로 많은 시도를 해 보았다. 꽃잎이나 녹차, 나뭇잎, 지푸라기, 말린 양파껍질, 신문조각, 잡지, 커피가루 등등

다른 분들의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면서 따라해 보기도 하고, 신기한 재료가 있으면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선생님이 재료를 나눠주기도 하셨는데,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재료는 바로 코끼리 똥. 지푸라기를 뭉쳐놓은 것처럼 생겨서 정체가 무엇인지 말을 안 해주면 전혀 알아차릴 수 없다. 근데 의외로 이 재료가 종이 만들 때 첨가하면 정말 예쁘다.

수제종이의 매력은 거친듯하지만 포근한 촉감과 자연스러운 느낌, 그리고 만들 때 들어간 정성이 아닐까 싶다. 또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종이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 놓은 종이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세상에 하나 뿐인 수제종이 만들기. 나의 소소한 취미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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