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담합추방, 소비자가 나서야

입력 2012-03-09 09:11 수정 2012-03-12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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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에이펙스 상임고문

“위원장님, 요금을 같이 올리자고 약속해 놓고 약속을 어기고 요금을 올리지 않은 저 사장이 나쁜 사람이니 혼 좀 내 주세요.” 이는 80년대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 중에 어느 피심인이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했던 말이다. 동업자끼리 요금을 올리기로 약속을 했으면 약속한 대로 요금을 올려야 하는 것이 동업자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상도(商道)인데 이를 지키지 않았으니 공정위에서 혼을 낼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카르텔이 왜 위법한지, 공정거래가 무언인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했으니 공정위 사건심의과정에서 이런 일이 자주 목격되었다.

최근 삼성과 엘지의 그룹 총수들이 담합은 해사 행위로서 담합을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하니 참으로 금석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과연 그룹 총수들의 이러한 선언 만으로 담합이 근절될 수 있을까? 미국의 경우 담합이 적발되면 담합가담자는 어김없이 징역형을 받는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미국시장에서 담합을 했다가 적발되어 수천억 원의 벌금을 물었고, 담합에 가담했던 임원들은 미국의 감옥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처럼 거액의 벌금과 감옥행을 무릅쓰고 왜 담합을 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담합의 기대수익이 플러스인 한 기업은 담합을 계속할 것이다. 기업은 담합을 통해 부당이익을 챙길 수 있지만 담합적발 시에 과징금 등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담합이 다 적발되는 것은 아니므로 이 비용에다 담합이 적발될 확률을 곱하면 이것이 담합의 기대비용이다. 결론적으로 담합으로 챙길 부당이득에서 이 기대비용을 뺀 것이 담합의 기대수익인데, 이 기대수익이 플러스라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상 담합은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담합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미국 경쟁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벌금이나 감옥행이 아니라 담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의 피해보상소송이다.

소비자에게 지급해야 할 피해보상금이 벌금액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담합피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군납유류가격 입찰담합한 5개 정유회사들을 상대로 국방부가, 최근에는 LPG가스가격담합 6개 정유사를 상대로 택시사업자들이 각각 피해소송을 제기한 바 있고, 가격담합을 한 비료회사들을 상대로 농민들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담합도 결국 기업의 이해득실에 따른 판단이므로 담합이 가져다 줄 이득과 담합이 적발되었을 때 부담하게 될 비용을 감안한 담합의 기대수익이 없다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담합은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최근 삼성과 LG 총수들이 담합을 해사행위로 규정한 것도 결국 담합의 기대수익이 더 이상 플러스가 아니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담합의 기대수익이 마이너스라는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최근 국내외적으로 대두된 소비자들의 담합피해에 대한 관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담합자진신고자에 대해 처벌을 감경해 주는 리니언시(leniency)제도와 담합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공조 등으로 담합의 적발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담합을 시장에서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은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이익이 나는 곳이면 불속에라도 들어가는 것이 기업이다. 그런 기업에게 기업윤리를 아무리 강조하고 과징금을 중과한들 담합의 기대수익이 플러스라면 담합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쟁당국이 담합의 기대수익을 줄이기 위해 과징금부과율을 더 높이고 담합가담자는 원칙적으로 형사처벌하는 등 제재의 강도를 높여나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장의 주권자인 소비자가 담합을 수수방관하지 않고 담합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우리 시장에서 담합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동훈 상임고문 약력

△중앙고 △서울대 정치학과 △행시 22회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보좌관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국장 △소비자본부장 △카르텔정책국장 △사무처장

/이동훈 법무법인(유) 에이펙스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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