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세계로] ‘러시아의 봄’을 기대하며

입력 2012-03-06 07:34 수정 2012-03-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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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부 차장

1989년 ‘벨벳혁명’의 주인공 바츨라프 하벨 초대 체코 대통령이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걱정하던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하벨은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 독재 체제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너뜨린 인물로 동유럽 민주화의 투사로 평가받고 있다.

작년 12월18일 사망한 하벨이 마지막으로 한 일은 같은 달 9일자 러시아 주간지 노바야가제타에 반(反)푸틴 시위대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실은 것이었다.

그는 기고에서 “법을 악용해 언론을 지배하고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러시아 정권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현재 러시아의 상황은 ‘철의 장막’을 무너뜨린 1989~1990년의 유럽의 변혁과 중첩된다”며 작년 12월 총선에서 집권당의 부정선거를 계기로 들고 일어난 러시아 시민들에 지지를 표했다.

열흘 뒤 하벨의 사망 소식에 크렘린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크렘린은 12월19일 사망 사실이 알려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는 즉각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한편 하벨의 부고는 무시했다.

국장으로 치러진 12월23일 하벨의 장례식에는 세계 각국 정상들이 참여했지만 러시아 정부 관계자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반 푸틴 시위자들은 하벨의 사망과 관련 민감하게 반응했다.

12월2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는 하벨에 대한 묵념과 함께 러시아 정부의 대응에 대해 ‘수치스럽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이들의 손에는 “거짓과 미움보다는 진실과 사랑을…”이라는 플래카드가 들려있었다.

이는 하벨이 생전에 남긴 말이다.

하벨은 1978년 발표한 평론 ‘더 파워 오브 더 파워리스(The Power of the Powerless)’를 통해 기만으로 가득 찬 전체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시민들에게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실하게 사는 것만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4일 치러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진실과 자유를 향한 그 동안의 몸부림이 또다시 독재와 기만으로 얼룩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차르(황제)’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잡은 푸틴 체제는 그동안 급등하는 유가에 힘입어 러시아에 번영과 안정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론 지배와 야당 탄압, 부패 확대로 시민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했다.

세계 체스 황제의 지위를 버리고 2005년부터 반 푸틴 운동에 몸을 던진 가리 카스파로프는 “기만 투성이인 푸틴의 방식은 러시아의 지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꼰 적이 있다.

후계자로 앉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자신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시키고 대규모 부정에 의해 집권당을 의회 선거에서 이기게 한 푸틴의 기만을 눈 뜨고 봐줄 수 없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세상은 변했다. 푸틴은 과거의 체제를 고집할 수만은 없다.

2004년 독재 체제를 무너뜨린 이웃나라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목도하면서 러시아 시민들도 진실의 힘을 믿게 됐기 때문이다.

집권 3기를 앞둔 푸틴에게 러시아인들은 고한다.

“우리는 야당이 아니다. 시민이다. 진실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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