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시인 박호민, 그리고 '서른잔치'

입력 2012-01-27 10:07 수정 2012-01-2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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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신 사회생활부장

2001년 12월. 시인 박호민 형(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과 마지막으로 만난게 그즈음이었던 듯 싶다. 형이 고향 장흥으로 낙향을 한 이후인지 이전인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호민형의 연락을 받고 인사동엘 오랜만에 찾았는데, 역시 호민형은 그날도 열심히 취해 있었다.

어느 민속주점에서 호민형을 부축해 나와 인사동 초입 고서적을 파는 책방 앞 포장마차에 터를 잡았다. 소주에서 막걸리로, 다시 소주로. 취하는 데까지는 얼마의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그날 헤어진 이후 호민형과는 2000년대 중반까지 두어번 통화를 했을 뿐, 다시 만나질 못했다.

당시 호민형은 술에 취하면 ‘창비(창작과비평)가 썩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당시 창비는 젊은 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끈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판매호조로 분위기가 한참 좋을 때였다.

이런 시기에 호민형은 종로거리를 걸으며 내게 ‘어떻게 창비가 이런 시같지도 않은 시를 출판할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인사동 그 날도 호민형은 창비엘 들러 출판 가능여부를 타진하고 온 길이었다. 기자가 정작 최영미의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은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호민형이 이 시(집)에 대한 비판한데는 다른 속뜻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을 하게 된 것도 그 때였다.

1990년대까지 ‘창비’는 ‘문지(문학과지성)’와 함께 한국 시단의 두 조류를 대표하는 출판사였다. ‘창비=현실참여’ ‘문지=순수시’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서른잔치는 끝났다’가 창비에서 나온 것을 놓고 창비가 ‘운동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다. 어찌됐든 최영미의 ‘서른잔치는 끝났다’는 선언은 운동의 변화를 간파한 수작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끝난 줄 알았던 ‘서른들의 잔치’가 다시 시작됐다. 판은 정치권에서 깔았다. 정치권에서 ‘젊은피’를 원하고 있다. 먼저 실행에 옮긴 곳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원외 청년몫으로 20대 청년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를 영입했다. 20대 나이에 엄친아를 연상시키는 학력, 지식기부자 이외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시피한 이 청년은 현재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한술 더 떠 청년몫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4명을 케이블TV의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으로 선출키로 했다. 25~35세 청년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에서 선출된 4명은 4월 총선에서 당선가능권의 비례대표 순번을 받게 되며 4명 중 1명은 당 최고위원으로도 선임된다.

자의든 타의든 정치권에서 판을 깐 ‘잔치’는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말의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운동권은 거리를 떠나 사회 속으로 들어갔다. 민주하가 진전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 이상 길거리 운동은 효력을 상실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많은 운동권이 경실련이나 환경연합 같은 시민사회단체로 흡수됐고 학생운동은 정치색을 벗고 학내복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로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한 듯 보였다.

MB정권 초기만 하더라도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은 오래갈 것처럼 여겨졌지만 정권 후반에 접어들면서 계속된 실정(失政)과 청년을 다시 정치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한 20~30대 청년의 정치참여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선정과정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제 관심은 청년의 정치참여가 ‘진정한 잔치’로 끝날 수 있는가 여부다. 기자는 정치권이 청년을 정치에 끌어들인 것은 시류에 편승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청년이 정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보단 청년을 끌어들이기는 것이 자신들의 정권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은 자신들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10여년을 (표면적으로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년이 잔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아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밀(최영미 詩 <서른, 잔치는 끝났다>)’ 능력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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