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졸자 고용할당제의 '덫'

입력 2011-09-02 11:24 수정 2011-09-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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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자유기업원 시장경제연구실장

여당인 한나라당이 ‘청년고용할당제’에 이어 ‘고졸자 의무고용할당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고졸자 의무고용할당제란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전체 근로자의 일정 비율(%)까지 고졸자들을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제도가 청년실업 해소와 학력 인플레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야당과 무상시리즈로 대국민 ‘퍼주기 선심경쟁’을 벌이는 한편 기업에 대해서는 강력한 ‘보이는 손’을 펼쳐 개입하겠다는 의도다.

고졸자 의무고용할당제는 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사기업이 어떤 인재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정치권이나 정부가 인재 채용을 어떤 방식으로 하라고 강제하려는 것은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극도로 침해하는 일이며, 시장경제와 배치된다. 고졸자 의무고용할당제는 실상은 ‘집단 인사청탁’과 다름없다.

기업의 인력과 인건비는 무한정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고졸자를 우대하여 강제로 일정 비율까지 뽑으라고 한다면 기업들로서는 그 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졸 직원의 일부를 내 보내거나, 신규 채용 때 다른 지원자를 덜 뽑는 수 밖에 없다. 특히 고졸자와 대졸자 사이에 낀 전문대 졸업자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올해 고졸자를 다수 채용한 금융권에서는 전문대 졸업자들의 채용 비중이 예년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졸자 우대 정책을 펴서 대졸자 실업자가 많아지면 그 땐 대졸자 의무고용할당제라도 도입할 작정인가?

한나라당은 고졸자 의무고용할당제로 고졸자들에게 취업기회를 보장해 주면 학력 인플레 현상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채용에서 고졸자들을 우대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채용 이후 승진이나 임금, 근로조건 등에서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열기는 누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문제들도 정부와 여당이 해결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더 많은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다. 고졸자 의무고용할당제는 이른바 ‘무더기 규제’의 시발점이 될 공산이 크다.

학력 거품 혹은 학력 인플레라는 표현은 ‘너무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을 하니까 문제’라는 의미다. 이 문제를 푸는 해법은 의무고용할당제 같은 반시장적인 방식이 아니라 대학생과 대학교 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 만드는 일이다.

대학 구조조정이 신속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력 인플레문제의 분명한 해법이다. 이를 제쳐둔 채 고졸자 의무고용할당제를 도입한다면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

기업들이 고졸자보다 대졸자를 ‘우대’하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기 위해 고졸자 의무고용할당제 같은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지만, 이는 실상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업의 직원 채용은 누구를 ‘우대’하거나 ‘차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인재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대졸자들을 많이 선발하는 이유는 그들이 고졸자에 비해 자신들에게 이윤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한 조직이다. 그 목적에 합당한 인재를 선발할 뿐이지 누구를 우대하고 누구를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건 대학을 졸업하건 문제의 핵심은 충분하고 괜찮은 일자리가 있느냐다.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일들, 즉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 등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여 창업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투자가 활발해지도록 하는 일이 먼저다.

규제를 늘리고 강화할수록 일자리는 줄어들고 취업의 문은 좁아질 것이고, 고졸자들의 취업은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억지정책이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일자리가 많아져야 고졸이든, 대졸이든 취업이 기회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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