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의 중국여행]한국인은 건널 수 없는 국경의 다리

입력 2011-06-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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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먼·단둥·지안

중국 끝자락에서 만난 국경도시들은 활기찼다.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은 내몽고자치구의 만저우리(滿洲里)는, 주말이면 자동차를 끌고 국경 넘어 장을 보러온 러시아인들로 북적였다.

카자르스탄과 국경을 마주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국경도시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건을 대량 구매해 가는 보따리상부터 달랑 작은 배낭 하나 둘러멘 사람들 얼굴 어디에서도 국경을 넘는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윈난성(雲南省)의 남단, 시솽반나(西?版納)는 육로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연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들로 늘상 붐빈다. 여권과 비자만 있다면, 비행기와 배를 타지 않고도 중국의 국경도시를 통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관통할 수 있다.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자란 내게 중국 변경에서 벌어지는 이 자유로운 왕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중에는 한국인은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고, 한국인은 절대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있기에.

백두산 관광객들이 거쳐 가는 필수코스 투먼(圖們). 그곳에는 중국과 북한을 잇는 두만강 다리가 있다. 매년 여름이면 우르르 몰려드는 한국인 여행객들로 잠시 생기가 감돈다. 6월 중순, 한차례 인파가 휩쓸고 지나간 오후, 두만강 다리는 고즈넉했다. 지나는 이 하나 없는 다리 위로 성큼 올라섰다. 힘껏 달리면 1분쯤 걸릴까? 걸어서도 충분히 건널 수 있는 거리였다. 그 다리에는 중국은 빨간색, 북한은 파란색 페인트로 선을 그어 ‘여기가 국경’임을 표시했을 뿐, 그 흔한 철조망조차 없다.

빨간색 경계선 끝머리에 서서 북한초소를 바라봤다. 때마침, 북한초소에서 화물트럭이 국경 넘을 채비 중이었다. 북한 번호판을 단 트럭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순간,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렸다. 고작 북한에 적을 둔 차가 내 옆을 지나는 것뿐인데. 바보처럼 얼음이 되어버리다니! 어릴 적 각인된 반공이데올로기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내 자유로워야할 사고를 가로막고 있는 걸까?

투먼을 떠나 단둥(丹東)에 도착한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다음날, 비가 걷히고 희뿌연 안개 속에서 바라본 단둥은 다소 을씨년스러웠다. 그건 단둥의 참모습이라기보다 압록강 건너 저편에, 평안북도 신의주 생각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져서였다. 신의주와 마주한 압록강 공원에는 초여름의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했다. 아침 일찍 체력단련에 나선 중국인들이 단체로 부채춤을 추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태극권을 연마했다.

반대로 압록강 넘어 어슴푸레 보이는 신의주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인적 없는 강가에 길게 늘어선 공장. 그 공장 굴뚝에서 뿜어내는 잿빛 연기만이 자욱했다. 해 저물고 압록강 공원을 다시 찾았을 때. 강 건너 반대편을 마주한 순간, 다리 힘이 쫙 풀렸다. 오색전등이 화려하게 수놓은 중국. 반대로 암흑천지로 변해버린 신의주. 강 건너에는 그 흔한 가로등조차 보이질 않았다. 생각보다 더 빈곤해 보이던 북한의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우리민족의 기상을 느끼고 싶어 찾았던 지안(集安). 그곳에도 한국인은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있다. 압록강 짧은 다리 건너 지척에 북한 만포시가 있다. 만포시의 전경은 너무도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줄을 지어 신나게 달려가는 모습,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의 힘 있는 손길이 눈으로 느껴질 정도.

한국인은 건널 수 없는 다리에서 우리 한반도의 현실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와 닿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간절히 염원했다. 바다와 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처럼, 이념의 장벽을 허물고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우리도 하나가 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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