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입력 2011-03-30 11:00 수정 2011-03-3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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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신 유통경제부장

▲유통경제부장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필자가 사랑하는 시인 기형도의 <빈집> 전문이다. 어떤 사랑의 열병에 앓던 시인은 결국 ‘내 사랑’을 빈 집에 가둬놓고 떠난다. 사랑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왔으나 정작 내가 떠난 내 마음에는 공허만이 남아 있다. 사랑이 공허해 떠났기보다 공허한 마음에 사랑이 들어왔기에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겨울안개처럼 짙고 깊은 불안정의 삶(시인의 등단작이 <안개>였음은 우연이 아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흔들리는 촛불과 같은 일상, 매일 무엇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강박감, 그러나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나의 마음은 공허하고 사랑도 내 것이 아니다.

신정아씨가 다시 논란이다. 누군가와는 사랑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이용을 당했고, 누군가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한 여성이 써낸 책 한권이 세상을 흔들고, 몇몇 유력 정치가의 정치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연유가 무엇인지, 왜 그래야했는지 고민하고 탐구하기보다는 그녀의 책 속에 기록된 스캔들때문에 인기다. 누군가는 우리사회의 관음증적 성향을 이용한 철저한 상업 주의의 결과물로 치부하기도 한다.

신씨를 옹호할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상업주의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현실은 너무 신씨의 현실과 닮아 있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사랑했고,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은 신씨만의 일은 아닐터이기 때문이다. 기만술과 사랑술이 넘쳐나는 것이 사회고 정치지만 이 둘 사이에 경계선이 없어 판단하기 힘들다.

대통령님의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겉으로는 사랑인 것 같지만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한나라당의 정 위원장에 대한 애증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정치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의 후배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오류투성이로 깎아 내리는 일도 이제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이 많은 나라 답게 정치도, 경제도, 모든 길은 사랑으로 통한다. 정부는 정책이나 시스템을 마련하기에 앞서 애정(?)에 호소한다.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의 끝은 언제나 우울한 종결을 맞는다. 끈질긴 구애의 끝은 대부분 검찰 수사로 종결된다.

‘나는 가수다’에서 국민가수 김건모씨가 겪은 시련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가수들을 모아놓고 서바이벌 형식으로 서열화한 것도 문제였지만 이미 정해진 룰을 깨버린 것은 결국 ‘사랑’때문이다. 사람 좋은 김제동씨나 시니컬하지만 풍부한 감성을 갖고 있다는 이소라씨의 행동은 사랑의 발로다.

결과론이지만 김건모가 재도전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쏘 쿨’하게 넘어갔을 터이다. 그렇다고 김건모의 욕심을 탓할 수는 없다. 정해 놓은 룰, 시청자와의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은 위대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쓰리다.

시인은 떠났고 사랑만 남았다. 시인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일 생각이 애시당초 없었는지 모른다. 아니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랑은 현실 속에 촛불처럼 굴절되고 안개처럼 위험하며, 일상이 공포스러워서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내 사랑은 빈 집에’ 갇힌 가엾은 열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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