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부부의 중국여행]우리네 인생을 닮은 ‘태산’

입력 2011-01-12 07:05 수정 2011-01-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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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또 오르니 인생길과 닮았구나”

태산(泰山)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육천 개가 넘는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인 홍문에서 시작하는 정석코스와,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중턱까지 오른 다음 중천문에서부터 등반을 시작하는 속성코스가 있다.

나는 2002년 톈진(天津)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사귄 친구들과 처음으로 태산에 올랐다. 중국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4월 셋째 주 토요일,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을 보며 우리는 충동적으로 야간 산행을 감행했다. 시작 전 각자의 오른손을 포개어 얹고‘파이팅’을 외치는 것으로 불타오는 산행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그 기세 등등함도 잠시뿐. 해발 1545m에 불과한 산. 등반 시작한 지 2시간 30분만에 후회막급이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야밤에. 그것도 경사가 60도에 달하는 가파른 산길을. 한 발 한 발 내딛기도 힘든 폭 좁은 계단을 오르는 자체가 그야말로 공포였다. 게다가 날이 밝고 정상에서 내려다 본 계단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라운 광경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 아래 또 계단들. 그 계단을 떼를 지어 올라오는 사람들의 무리가 마치 촘촘하게 세워놓은 도미노판 같았다. 누군가의 실수로 한 명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등반 중인 모든 사람들이 도미노가 되어 쓰러질 판이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공포의 계단. 두 번째는 남편과 함께였다. 우리는 중턱에서 시작하는 속성코스 대신 홍문에서 시작하는 정석코스를 택했다. 산을 오르기도 전에 나는 걱정이 앞섰다. 공연히 풀리지도 않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그냥 한 발 한 발 천천히, 각자의 페이스만 유지하면 못 오를 이유가 없어. 미리부터 겁먹지 말자.’

태산의 정기를 받으면 10년은 젊어진다는 속설 때문인지 머리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 등반객이 유난히 눈에 띈다. 검소한 인민복 차림에 바닥 얇은 실내화를 신고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태산은 도교의 성지다. 태산 산기슭에 자리한 수 십 개의 사찰도 모두 도교의 것이다. 유교의 발원지인 중국, 유교의 고향이라는 산동성에도 이제 유교는 그 흔적조차 희미하다. 계단을 오르는 등반 여정이 지루해 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사찰 하나가 얼굴을 힐끗 내민다.

아쉽게도 우리의 불타오던 산행의지는 중천문에서 딱 꺾여버렸다. 꼭 정상까지 걸어서 오르겠다며 호기를 부리더니만 간신히 중천문에 올라서는 남편이 먼저 두 손을 들었다. 사실 나도 내심 반가웠다. 이까짓 등산이 뭐가 힘드냐며 호기를 부렸지만 케이블카를 타러 가면서 속으로 나는 쾌재를 불렀다. 케이블카를 타니 그 험난한 여정도 초고속이다. 순식간에 정상에 도착했다. 허무했다. 오래 전 내가 비지땀과 식은땀까지 쏟아가며 올랐던 길인데. 돈으로 육신의 고통도 줄 일 수 있고 덤으로 시간까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씁쓸했다.

혹자는 태산이 유명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겨우 해발 1545m에 불과한 태산 이름 앞에 ‘오악(五岳)’이라는 명성이 걸 붙는 이유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태산에 오르고 나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님을. 만만하기는커녕 같은 높이의 보통 산에 오르는 것보다 몇 곱절의 힘이 든다는 것을.

태산은 우리네 인생여정을 닮았다. 태산의 한 계단과 우리 인생의 한 계단. 열심히 올라도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는 지쳐서 주저앉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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