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뱅커인생 '세번의 실패'는 없다"

입력 2010-11-29 10:58 수정 2010-11-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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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銀 인수' 반전드라마 쓴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의 경영학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전은 한편의 반전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를 지켜본 금융권 인사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그 만큼 예상하지 못했고 시장의 충격이 사라지기 전 모든 일이 마무리됐다.

빠른 스피드로 전개된 이번 반전 드라마의 중심에는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있다. 모든 금융권의 시선이 우리금융지주에 쏠려 있었고 시장에선 하나금융도 당연히 우리금융 인수전에 참여할 줄 알았지만 김 회장은 방향을 돌려 외환은행을 선택했다.

시장도 놀랐고, 한창 우리금융 민영화를 준비해온 당국도 놀랐다. 외환은행에 대한 실사를 맡았던 하나금융의 담당자들조차 실사 직전까지 우리금융에 대한 실사로만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아무리 소리소문 없이 하는 게 인수·합병(M&A)이라지만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나금융은 올해초부터 우리금융지주와 외환은행을 두고 저울질을 해왔다. 마침내 결론이 났다. 이후론 일사천리였다.

그동안 김 회장을 보좌해 왔던 한 측근은 “평소 외환은행에 대해 애정이 남달랐던 김 회장으로써는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김 회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금융 인생 최고의 깜짝쇼= 올해초만 해도 김 회장은 독자생존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둘러싼 ‘메가뱅크’ 논의가 거셌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하나금융 고위 관계자는 “(김 회장은) 하나금융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자생존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오히려 은행을 키우기 보다는 보험, 캐피탈과 같은 비은행부문의 양적 확대를 고민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국내 금융그룹 4위라고 했지만 3위인 신한금융지주와는 총자산이 100조원이상 차이났다. 김 회장은 마음을 바꿔 먹을수 밖에 없었다. 그때가 3월이었다.

이때부터 우리금융과 외환은행을 놓고 저울질을 시작했다. 우리금융과 외환은행을 담당하는 팀이 꾸려졌다. 이들은 매달 우리금융과 외환은행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올렸다.

김 회장의 마음이 외환은행으로 기울기 시작한 건 10월부터다. ANZ은행이 터무니없이 낮은 인수가를 제시하는 통에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했다. 10월 8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참석한 김 회장은 론스타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김 회장은 “본격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소문난 연애론’을 꺼내며 ‘절대 보안’을 강조한 것은 물론이다. 결국 김 회장은 45년 금융 인생 최고의 깜짝쇼를 기획했고 보란 듯이 성공시켰다.

◇ 은행 M&A의 산 증인= 사실 김 회장의 45년 ‘뱅커 인생’은 M&A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투자금융이라는 단자회사에서 출발해 국내 3위의 금융그룹으로 도약한 하나금융의 성장 과정을 보면 김 회장의 성장 경력과 궤를 같이한다.

김 회장은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보람은행 인수를 진두지휘했다. 부실은행 정리 과정에서 운이 따랐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상당했다. 하나은행의 장점인 자산관리와 프라이빗뱅킹(PB)의 출발이 보람은행 인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2005년 서울은행 인수는 드라마틱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우리은행의 평화은행 흡수 등 금융권의 ‘몸집 불리기’가 붐을 이루고 있을 때 하나은행은 한미은행에 이어 제일은행과의 합병에서도 실패했다. 그야말로 중소 은행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 때문에 2002년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인수전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론스타의 현금 베팅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다. 최종 인수협상대상자로 하나은행이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론스타가 추가로 서울은행 인수 후 3년간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를 정부(예금보험공사)와 나눌 수 있다고 ‘폭탄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재빨리 정부에 최저가격(1조 1000억원)을 보장하는 수정안을 제안하고 나서야 서울은행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하나은행은 당시 국내 5위 서울은행을 인수함으로써 대형은행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김 회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6년 3월 외환은행 인수전에 나섰다가 국민은행에 고배를 들었다. 이어 LG카드 인수전에서도 탈락하면서 하나금융이 정체에 빠진 것이다. 특히 경쟁사인 우리·KB·신한지주에 한참 뒤처지는 4위였으며 최근엔 기업은행에 밀려 5위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인수를 성사시킴으로써 하나금융은 경쟁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의 패배를 김 회장은 잊지 못했고 이번 외환은행 인수에 승부수를 던졌다”는게 하나금융 관계자의 말이다.

◇ 다음 행보는?= 외환은행 인수를 마무리한 김 회장의 다음 행보에 대해 금융권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상 후속작업도 김 회장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내년 주총에서 연임을 하면 2014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된다.

하지만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61학번)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주목의 대상이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비해 지나치게 오래 ‘집권’ 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외환은행 인수로 45년 금융인생에서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쓴 김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내년 3월 임기 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후계자를 어떻게 키워 가는지는 하나금융과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승유 회장은?

△1943년 충북 진천 출생

△1961년 경기고 졸업

△1965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65년 한일은행 입행

△1971년 남캘리포니아대 경영학 석사

△1971년 한국투자금융 입사

△1976년 한국투자금융 증권부장

△1980년 한국투자금융 부사장

△1991년 하나은행 전무

△1997년 하나은행장

△2005년~ 하나금융지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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