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낙양지귀(洛陽紙貴)

입력 2024-11-14 18:35 수정 2024-11-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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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성 서예가ㆍ한국미협 캘리그라피 분과위원장

낙양지귀는 역사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로, 성어 관련 고사는 ‘진서·좌사전’에서 처음 나왔다. 원래 뜻은 진나라 좌사(左思)의 ‘삼도부(三都賦)’가 씌어진 후 필사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 낙양의 종이 값이 올랐고, 이후 서적 등이 호평을 받아 아주 잘 팔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유행하였다. 즉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말한다.

좌사(약 250~305년)는 서진(西晉)의 유명한 문학가이다. 좌사의 여동생 좌분은 용모가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나 진 무제의 후궁으로 뽑히게 되어 좌사 가족은 모두 도성 낙양에 정착했다. 그리고 좌사는 사실과 역사에 바탕한 삼도부를 지었다. 삼도라면 삼국시대 위(魏), 촉(蜀), 오(吳)의 도읍이었던 업(業), 성도(成都), 건업(建業·지금의 남경)을 가리킨다. 또 부(賦)란 사물을 아름답게 묘사해내는 중국문학의 일종이다.

삼도부를 쓰기 위해 그는 이 세 곳의 역사, 지리, 물산, 풍속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글쓰기에 몰두해 10년에 걸쳐 마침내 완성했다. 당시 장화(張華)라는 저명한 대시인이 있었는데 좌사의 삼도부를 읽고는 무릎을 치면서 감탄했다 한다. 그리고 몇몇 유명한 문인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삼도부는 빠르게 도성인 낙양 전역에 퍼졌고, 모두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귀족이나 부자들은 아직 인쇄술이 없던 시대이므로 종이를 사서 이 사람 저 사람 베껴 읽음으로써 종이가 바닥이 날 정도였으니 급기야 도성 낙양의 종이 값이 폭등하고 말았다(洛陽紙貴·사진)는 것이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국 문학사 최초로 여성작가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며 그녀의 작품들이 품절되어 구독자들의 책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하니 이야말로 낙양의 종이 값과 다름이 없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그의 글에는 “예술 형식 간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이 뚜렷이 담겨있다”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한편,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수상으로 한강 작가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스웨덴의 노벨문학상, 영국의 부커상, 프랑스의 공쿠르상 중 2개의 상을 받은 작가가 됐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은 이후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이자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으니 아시아 여성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한강 작가가 최초이다. 그녀의 작품은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넘어 전 세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자신만의 서정적 문체와 실험적인 방식으로 서술하여 한국 문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한강 작가가 한국 문학계와 출판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장안의 종이 값이 좀 오른들 무엇이 대수인가. 이런 영광스러운 쾌거를 이루어낸 그녀에게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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