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ㆍ변화 속 28년간 승부사 기질로 '올라운더' 역량 쌓아
여성 후배에 "소모임 참여로 네트워킹 역량 키워야" 조언
"끊임없이 공부ㆍ도전해 새 먹거리 발굴 등 성과 낼 것"
1996년 저축은행업권에서 여성 직원이 ‘성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여성은 저축은행 한 곳을 30년 다녀도 영업점 창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당연했다. 2~3년 뒤 “대졸자면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직군에서 일할 수 있게 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일반직 전환 고시’가 생겼다.
여성 직원이 소위 ‘남성 직군’이라 불리던 여신·외환·재무 등 일반직군으로 전환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다만, 기회의 문이 온전히 열렸다고 보기 어려웠다. 창구에서 수신업무만 담당하던 텔러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여신업무 시험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례가 없으니 두려움이 커 시험에 응시하는 여성 직원도 적었다.
“뭐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어, 공부하면 되지.” 유승환 웰컴저축은행 경영전략본부 상무이사는 “막상 기회를 주니 시험을 보지도 않는다”는 당시 일부 직원들의 비웃음에 승부사 기질이 발동했다. 석 달간 매일 퇴근 후 여신 관련 서적을 펴고 공부했다. 결과는 ‘전 과목 만점’이었다.
일반직군으로 이동해 남성 직원들과 동일 선상에서 ‘대리 승진 시험’을 볼 수 있게 된 그는 승진 시험도 한 번에 통과했다. 30대 초반의 유 상무는 그렇게 텔슨상호저축은행의 ‘여성 대리 1호’가 됐다. 영업점 창구를 벗어나 본점 경영기획팀에서 일을 시작했다.
대리에서 경영전략본부 팀장, 본부장을 거쳐 28년간 한 저축은행에서 근무한 그는 여러 위기와 변화를 마주했다. 2001년 제정된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라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이 되는 과정을 경험했고, 그가 몸담은 회사는 여러 차례 매각·인수 과정을 거치며 이름이 총 다섯 번 바뀌었다.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등 업권 전체의 위기도 겪었다.
유 상무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영기획·전략 팀에서 여러 위기 속 의사결정 과정과 대처 방법 등을 봐온 경험이 오늘날 가장 큰 자산이 됐다”고 강조했다.
건전성, 수익성 지표 관리부터 신사업 추진까지 웰컴저축은행 경영 계획·전략을 총괄하는 그는‘올라운더(all rounder)’다. 2022년 경영전략본부 상무이사직에 올라 도전정신을 기본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헤쳐가고 있다.
유 상무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간 만난 선배들의 덕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기회가 왔는데, 굳이 안 볼 이유가 없다”며 일반직 전환 시험을 보도록 권유하고 응원했다. “네가 회사의 주인이면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믿고 지지해준 선배들을 유 상무는 ‘은인’으로 꼽았다. 그는 “좋은 선배를 만나 업무에 임하는 태도, 업무 방법 등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선배들의 가르침으로 기본기를 탄탄히 다진 유 상무는 2014년 웰컴저축은행에서 차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당시 웰컴금융그룹이 그가 근무하던 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다.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해도 우리의 자산이 되니까 일단 해보라’는 그룹의 분위기는 도전을 좋아하는 그와 잘 맞았다. 유 상무는 “기획·수신·외환사업팀 팀장을 동시에 맡아 힘들었지만, 그만큼 업무 역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실제 여러 성과로 이어졌다. 유 상무 주도로 2년간 기획재정부와 소통한 끝에 웰컴저축은행은 2020년 저축은행 중 최초로 외환 송금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 2022년 4월에는 금융혁신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한 펀드 조성 사업에 참여했다. 웰컴저축은행은 약 300억 원 규모의 ‘웰컴벤처스 모펀드 1호’를 조성, 벤처 및 스타트업의 디지털 부문을 지원 중이다. 그는 “대표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여러 신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유 상무가 가장 보람찬 성과로 꼽는 것은 2021년 마이데이터 사업권 획득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웰컴저축은행은 마이데이터 허가심사를 통과한 첫 번째 저축은행이 됐다. 그는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사업을 기획하고, 당국과 소통해 사업권을 따기까지의 과정을 이끌었다. 마이데이터를 통한 웰컴저축은행의 맞춤형 대출상품 중개 서비스 실적은 현재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급성장 중이다. 네이버·카카오·토스 등 빅테크 다음으로 타 금융사 대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하면 되지.” 유 상무가 늘 품고 있는 생각이다. 그는 “뭔가를 해내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특히 남들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을 해낼 때 성취감이 크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지금도 집무실 옆 대표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향후 전략, 신사업 아이디어 등을 끊임없이 논의하고 있다.
그가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네트워크’다. 유 상무가 지금까지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여성 후배들은 꼼꼼하고 업무 이해도도 높아 개인 역량이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성과를 내겠다는 열정도 있었다. 다만, 사람 간 관계 즉 ‘네트워킹’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아쉬웠다.
그는 “일은 결국 혼자 하는 게 아니기에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잘하는 이들끼리 친해지게 마련이기에 소통을 많이 하면 시너지 효과로 본인의 역량도 크게 오른다”고 힘줘 말했다.
네트워킹 역량을 기르기 위한 유 상무의 팁은 ‘소모임’이다. 그 역시 기획팀장 시절 저축은행업권 기획팀장 모임에 나갔다.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이슈는 없는지 살피고, 정보를 교환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지금은 업권에서 ‘기획통’으로 인정받아 각종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다.
유 상무는 “올라갈수록 기회는 네트워킹에서 온다”면서 “결국 승진의 기회를 주는 건 의사결정자들이기 때문에 내 일만 열심히, 잘하는 게 다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의사결정자들 사이에서 ‘그 친구 괜찮더라, 일 잘한다더라’하는 여론이 조성되려면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며 “만나서 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두 개씩 얻어가는 게 분명히 있고 인사이트가 달라진다”고 피력했다.
유 상무는 연말과 내년 초 핵심 과제로 ‘리스크 관리’와 ‘신사업 추진’을 꼽았다. 위기 상황 속 건전성, 수익성 지표 관리를 통해 안정을 찾은 뒤 신사업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웰컴저축은행이 가장 집중하는 신사업은 웰컴디지털뱅크 애플리케이션(앱) 고도화다.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활용해 고객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는 “단순히 하나의 상품을 내놓기보다 ‘생애주기 상품’을 구성하는 등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들이 웰컴디지털뱅크를 떠나지 않고 계속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상품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고객에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떤 고객을 신규로 타겟팅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중심의 대출 운용에서 벗어나 수익을 극대화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도 유 상무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다. 이를 위해 그는 하루에 2시간씩 관련 법령집, 신사업 관련 책을 들여다보고 직원들과 함께 토론하며 의견을 공유한다. 유 상무는 “환경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하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