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에 이끌려 영상을 수차례 돌려보는데, 뜬금없이 한동안 챙겨보던 드라마 한 편이 생각났다. 아마 ‘변화’라는 단어 때문인 것 같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해리 정체성 장애를 앓고 있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사람의 정체성이 존재하는 정신질환으로, 내 속에 여러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내면을 지배하는 또다른 나는 실종된 동생이다. 자신의 강요로 떠난 졸업 여행에서 동생이 실종되고, 이로 인한 죄의식 슬픔 그리고 분노 등이 저녁마다 나를 내 동생으로 바꿔놓는다. 동생인 나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로 자신의 마음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일기가 주인공의 치유를 돕는다. 주인공은 글을 통해 자신이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려 애쓰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이 한강의 인터뷰 속 ‘변화’와 같은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맥락도 다르다.
하지만 글쓰기가 감정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분명하다.
글을 쓴다는 말 대신 ‘펜대를 잡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게 더 일반적이다. 그 어느 쪽이든 빈 종이를 글로 채우는 건 손을 움직이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글쓰기는 신체를 움직여 뇌를 자극시킨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미있는 건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과 키보드를 치는 행위가 뇌에 미치는 영향에 차이가 있다. 전자가 더 많은 뇌 영역을 활성화시키고, 때문에 사람들이 좀 더 창의적일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움직여 주는 근육이 다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글을 쓰는 건 손가락의 움직임 그 이상이다. 우선 무슨 이야기를 쓸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할 지 결정해야 한다. 맞는 단어를 고르고 조합하며 적절한 경험과 감정까지 끌어와야 한다. 한마디로 두뇌 활동의 총 집합이다.
인간의 뇌는 크게 왼쪽 뇌(좌반구)와 오른쪽 뇌(우반구) 둘로 나뉜다. 그리고 두뇌 가운데 부분에 변연계(limbic system)가 있고, 그 주위를 신피질이 둘러싸고 있다. 변연계는 감정, 행동, 욕망 등의 조절을 담당한다. 그래서 ‘느끼는 뇌’로 불리기도 한다.
감정적 깊이가 있는 글을 쓸 때, 변연계가 특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도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다. 창의적인 글 쓰기에는 변연계 중에서도 해마(hippocampus)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생김새가 가늘고 긴 주둥이가 앞으로 삐죽하게 튀어나온 어류 ‘해마’와 유사해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 주로 장기기억을 처리하고 학습을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 행동, 감정적 장면 전개의 기초가 되는 기억을 검색하려면 이 부분이 움직여 주어야 한다.
모든 포유류의 뇌에는 변연계가 존재하는데 반해, 신피질은 오직 인간의 뇌에서만 발견된다. 신피질은 언어, 추론, 논리 혹은 분석 따위를 관장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변연계에서 내린 결정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곳이 바로 신피질이다. 또한 글을 쓰다가 ‘아하’와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순간이 찾아왔다면, 신피질이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의미다.
한강의 인터뷰를 다시 한번 읽어보니 ‘작가’를 숙명으로 여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피할 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부류에 속하지도 않고, 글보다는 영상이 편하고 친숙한, 챗GPT가 정보를 찾고 요약해 완성본으로 만들어 주는 시대에 사는 이들이 글에 대한 친밀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읽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스스로 펜대를 잡게 할 수 있을까?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는 한 친구의 조언에 따르면 오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그저 떠오르는 대로, 쓴 글을 다시 읽어보거나 하지 말고 그냥 쓰라고 한다. 멈추지 말고. ‘나에게 가족은…’과 같이 글의 일부가 주어져 있고, 나머지를 채우는 글쓰기 연습책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