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지양' 재개발 조건 안지켜도 된다고?…"분쟁 증가 예상, 제도 개선해야"

입력 2024-10-2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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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자이 2단지 전경. (출처=네이버 부동산 )
▲경희궁 자이 2단지 전경. (출처=네이버 부동산 )

아파트 펜스(담장) 설치를 지양하는 조건으로 재개발사업 인가를 받았더라도, 입주자대표회의가 아파트 단지 외곽에 펜스를 설치하는 것을 구청 등 지자체가 막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입주 이전 사업 시행자인 조합에게 부과됐던 의무를 입주자대표회의가 승계한다고 볼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업계에선 이와 유사한 분쟁 사례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2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 올해 8월 22일 서울 종로구 경희궁자이 2단지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종로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위허가 반려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인 입대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단지 입대의는 2022년 11월 22일 종로구청에 아파트 단지 외곽에 펜스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의 행위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종로구청은 "펜스의 설치는 재개발사업 당시 부가된 사업시행계획인가 조건에 반한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다. 입대의는 이에 불복해 종로구청을 상대로 반려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앞서 이 아파트는 '공공보행통로 확보를 위해 아파트 단지 경계에 담장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았다. 정비계획에 따르면 이 아파트 건축 예정 부지 내의 기존 도로를 폐쇄하는 대신 단지 내 공공보행통로를 만들고, 그 통로 확보를 위해 단지 경계에 담장을 설치하지 않는 것으로 돼있다.

재판부는 종로구청이 반려 이유로 제시한 '사업시행계획인가 조건과 지구단위계획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봤다. 또한 이 아파트 펜스 설치는 증축이 아닌, 시설물을 늘리는 ‘증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담장을 설치하지 않을 의무를 가지고 있는 자는 사업시행자(정비사업 조합)로, 입주자들 또는 입대의가 사업시행자에게 부과됐던 이 의무를 특정 승계한다고 볼 어떠한 법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종로구청은 현재 항소를 취하한 상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앞서 비슷한 문제로 대법원까지 갔으나 기각된 아파트 단지 사례가 있음을 고려해 항소를 취소했다"며 "판결문 결과를 수용하고 행위 허가를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악용 사례 증가 예상…"이행강제금 등 입법 미비 개선해야"

업계에선 비슷한 유형의 분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이 일종의 선례가 돼 조합이 단지 개방, 공공보행통로 설치 등을 조건으로 건축 허가, 사업시행계획인가 등을 받고 입주 이후 이를 지키지 않는 악용 사례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재개발·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지자체가 반려한 것을 거둬들이는 모양새로 판결례를 남기게 된 것인데, 차후 다른 단지들에 일종의 레퍼런스로 작용해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이러한 판결이 나오면 악용 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다"며 "지자체 보다 재판부 판단이 상위로 작용해 수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관리법상의 입법 미비된 사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견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선 사행시행계획 인가 조건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던지, 조건을 사업시행자만 준수하는게 아니라 입주자대표회의에도 승계되서 준수해야 한다는 식으로, 판결문에서 지적한 내용을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시정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부과가 가능한 이행강제금 신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행 건축법 제80조에 따르면 신고 없이 축조를 한 위반 건축물에 경우, 시정 명령 미이행시 '이행강제금' 부과가 가능하다. 다만 펜스가 2m 이하인 경우 축조 신고를 하지 않아도 돼,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울시가 올해 8월 단지 커뮤니티 시설 개방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단지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주민공동시설 개방 운영기준'을 마련했지만, 이는 펜스 등 단지 개방 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단지 개방, 공공보행통로 미이행 건에 대해선 이행강제금을 물릴 수가 없고 1회성 과태료 부과 수준에 그쳐 제도적 한계가 있다"며 "많은 지자체가 이와 관련된 이행강제금 신설에 동의하고 있고, 서울시도 국토부에 관련해 지속적으로 건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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