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부는 주요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전문가들에게 기대하는 건 오랜 연구 경험에서 축적된 전문성과 이를 토대로 한 통찰이다.
최근 연금개혁 논의를 이끄는 것도 교수 등 전문가들이다.
특히 참여연대를 주축으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뭉친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연금행동)의 입김이 세다.
연금행동은 문재인 정부 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필두로 ‘소득보장’을 주장한다. 김 교수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제갈현숙 한신대 강사가 연금행동을 대표하는 전문가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주민(위원장)·김남희 의원은 참여연대, 이수진 의원은 한국노총, 남인순 의원은 여연 출신이다.
문제는 전문가들의 전문성이다. 김 교수와 주 교수를 제외하면 연금행동 소속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연금 관련 연구 실적이 빈약하다. 주로 학술논문보다는 참여연대의 ‘월간 복지동향’ 등 비학술지를 통해 주장을 제시했다.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구조를 강화하기보다는 연금연구회 등 재정안정 측 전문가집단이 내놓는 객관적인 근거들을 ‘합의되지 않은 개념’이라고 외면하고, 연금행동의 주요 구성원인 참여연대와 양대 노총, 여연의 ‘신념체계’만 대변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전문성’이 빈약한 주장이 ‘전문가의 견해’로 포장돼 여론을 호도한다.
통찰도 찾아보기 힘들다. 연금개혁은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수입 확대분보다 지출 확대분이 커지면 미래세대는 수지 불균형에 따른 막대한 적자를 조세나 보험료로 매워야 한다. 이는 미래세대의 처분가능소득을 줄여 내수 침체, 기업 해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지출보단 수입을 확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도 연금행동은 ‘노인 빈곤’만 내세워 수입 확대에 관한 논의 자체를 막는다. 연금행동 핵심 구성원은 ‘50대’, ‘대기업’, ‘정규직’으로 요약된다. 이들의 이익은 곧 미래세대의 부담이다.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위해선 전문가 풀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최소한 전문성이 아닌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바탕에 둔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논의를 주도하게 해선 안 된다. 그러려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부터 구성해야 한다. 연금특위 구성이 늦어질수록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여론도 왜곡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