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강조한 정책의 중요성은 지난주 노벨경제학상 발표를 계기로 곱씹게 됐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전 세계 부국과 빈국을 가른 핵심 요인으로 ‘제도’를 꼽은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세계 불평등과 빈곤의 뿌리를 찾는 데 천착했다. 지리, 문화, 기술 등 국가 발전 격차를 설명하려는 다양한 가설들을 격파하면서 결국 운명을 가른 건 국가가 택한 ‘제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경제 제도가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핵심 역할을 했고, 이를 결정한 건 다름 아닌 정치제도라는 것. 역사에 필연이란 없으며 갈림길에 놓인 사회가 ‘선택’한 결과라는 점에서 샹셀 소장의 지적과 맥이 닿았다.
서울시가 시범사업 중인 ‘디딤돌소득’은 우리 사회의 고민을 풀어가는 ‘선택’ 실험이다. 기존 복지제도의 ‘맹점’을 극복하면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사람을 수급의 굴레에 가뒀다. 노동으로 수입이 늘면 자격을 잃는 탓에 수급으로 연명하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디딤돌소득은 하후상박형으로 어려울수록 더 지원하면서도 근로의욕을 꺾지 않았다. 2년 차 분석 결과 근로소득 가구(31.1%)와 탈수급 비율(8.6%)이 모두 증가했다. 소득증가와 자립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대상자 기준을 중위소득 85% 이하로 넓히면서 사각지대도 해소했다. 일시적 빈곤에 처한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셈이다. 전국화할 경우 재원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5% 안팎인 복지 예산의 자연증가분 범위 내에서 마련한다. 향후 경제성장 규모에 맞춰 조정할 계획인데, 현실성을 고려한 것이다.
추가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지만, 결과가 고무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포럼에 참석한 세계 불평등 대가들과 국내 경제학자들 모두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결과가 누구보다 반가웠을 오세훈 서울시장은 포럼 말미에 무거운 말을 꺼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아직도 기본소득으로 일단 25만 원씩 줘 보자고 말하는 현실 정치를 돌아보면 오늘 토론은 고급스럽다”며 “그런 단순 무식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제1야당 대표로 활동하는 마당에 우리가 이런 토론을 하는 게 국민 동의를 얻는 데 도움이 될까 답답하다”고 했다.
야당 대표를 향한 거친 표현이 주목받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도 선거에서 선택받지 못하면 끝인 현실정치의 냉혹함, 그럼에도 정책 경쟁이 실종된 국내 정치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읽혔다. 민주주의의 미덕과 덫을 분석한 벤 앤셀은 저서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선호하는 정책에 투표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들에 반대하기 위해 투표하면 정치는 끔찍해진다”고 했다. 나라 운명을 뒤바꿀 ‘정책’이 뭔지 경쟁하고, 그 정책을 보고 ‘선택’하는 날이 와야 복합적 위기 앞에 놓인 한국도 길을 찾을 수 있다. 0jung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