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진단의 기쁨, 진단의 슬픔

입력 2024-10-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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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고혈압으로 내게 다니던 환자였는데 그날은 아들과 함께 나를 방문했다. 지난 주말에 어지러워서 큰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검사에서 별거 없다는 소리와 함께 어지러우니 신경과 외래를 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오늘이 신경과 외래를 가는 날인데 아들이 가기 전에 이제껏 어머니를 봐주었던 동네 의사에게 가서 한번 의견을 들어보자고 해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평소보다 혈압이 낮았고 맥박이 빨랐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이분이 과거에 대동맥박리로 수술한 적이 있다는 것을. 그냥 신경과에 가시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며칠 전 응급실에서 한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그냥 그렇게 보낼 수도 있었지만, 평소보다 낮은 혈압과 그보다 빠른 맥박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그래서 그렇게 그냥 신경과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초음파 침대에 눕히고 심장을 들여다보았다. 대동맥이 다시 박리되어 있었다. 좌심실에서 분출한 혈액이 대동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지 못하고 상행대동맥에서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러니 혈압도 낮고 맥도 빨랐던 것이었다.

나는 신경과가 아니라 다시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의뢰서와 함께 초음파 시디를 동봉해 보냈다. 나는 그녀의 과거력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낮은 혈압과 빠른 맥박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는 것에서 자신을 스스로 칭찬했다.

그러나 한참 뒤 그녀와 똑 닮은 그녀의 딸이 찾아왔다. 알고 보니 딸도 내게 다니던 환자였다. 딸이 전한 말이 어머니는 그날로 중환자실에 들어갔고 며칠 뒤 수술을 받으셨으나 끝내 못 깨어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날 그렇게 황급히 중환자실로 들여보낸 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었다고 한다.

진단의 기쁨은 환자가 병이 나았을 때다. 환자가 돌아오지 못하면 진단의 슬픔이고 안타까움이고 아픔이다. 황급히 응급실로 보내느라 나 또한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환자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고, 환자와 똑 닮은 딸이 나를 방문할 때마다 환자의 웃음이 슬피 떠오르는 것이고 그래서 뭐라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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