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 곳지만 국정감사를 앞둔 이 시기에는 유독 더 북적인다. 특히 기업이나 금융회사 등 대관(對官) 업무 관계자들은 의원회관 문턱이 닳을세라 드나든다. 일부는 아예 여의도에 임시 거처까지 마련하고 의원회관에 상주하다시피 한다고 하니, 국회가 대관 라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됐다는 우스개소리도 나온다.
그도 그럴것이 대관업무의 1년 농사는 국감에 최고경영자(CEO)가 불려가느냐 마느냐로 판가름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여기에 대관 라인의 목숨줄까지 함께 언급이 되니 대관 라인들이 국감 증인 출석 명단에 목을 맬수 밖에 없다. 대관 라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회장님, 사장님을 국감에 세워서는 안된다는 일념 하에 온갖 인맥을 동원한다. 어떤 의원실에서 누구를 부르려고 하는지, 어떤 이슈로 무슨 질문을 할지 알아내기 위해 국회의원과 보좌관을 향한 자발적인 '을' 노릇도 서슴치 않는다.
특히 올해 온갖 이슈로 정무위 출석 1순위인 금융회사 대관 업무자들은 발이 부르트도록 의원회관을 드나들면서 회장님, 행장님이 불려나가지 않도록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실 국감은 국회가 행정부의 국정 수행이나 예산 집행 등 국정 전반에 관해 상임위원회별로 법정된 기관에 대해 실시하는 감사를 말한다. 이에 국감을 추수에 비유하기도 한다. 정부가 올해 벌인 농사가 잘됐는지,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면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고쳐보자고 마련한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국정을 감사하자는 것인지, 기업을 감사하자는 것인지 헷갈리는 모양새가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을 관할하는 정무위는 유독 그런 행보가 두드러진다. 정무위 소속 한 의원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금융회사 CEO를 향해 "국감에서 두고 봅시다"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는 금융권에서는 유명하다.
국회는 기업들이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넓은 의미에서 감사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업에 대한 통제와 감시 역할도 정부에 부여된 역할 중 하나이기에 정부가 이런 역할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국감에서 이뤄져야 할 일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나 금융사들에 대한 감사까지 이뤄질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이나 금융사들이 감사의 빌미를 제공했다. 특히 금융사의 경우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연초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로 시끄러웠던 것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연이어 100억 원대 횡령사건에 금융지주사 전 회장이 연루된 부당대출 사고까지. 수년간 외쳤던 내부통제 강화 조치가 공염불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잘못을 했다면 지적을 받아야 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그간 국회가 보여온 행태다. 최근 몇년간 국감장은 일부 의원들의 '갑질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다. 증인들을 불러 세워 놓고는 호통치고 윽박지르는 행태로 국정감사의 본래 목적 마저 의심케하는 상황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혹은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득표를 위해 무리한 요구에 나서는 경우도 빈번했다.
부디 올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생산적인 국감이 되기를 희망한다. 금융권도 왜 매번 국감의 단골 손님이 되는지 반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