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언제든지 압박' 엄포
은행권, 실수요자 보호 고심...책임은 은행에
금융당국이 ‘더 강한 개입’에서 ‘자율규제’로 가계대출 관리 입장을 선회하면서 은행들은 ‘실수요자에 대한 예외 규정’ 찾기에 나섰다. 10일 금융감독원은 18개 국내은행장과의 가계부채 관련 간담회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 라인’을 내놓지 않았다. 이 역시 은행권의 자율에 따라 ‘알아서 하라’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가계대출 추이를 면밀히 관리하며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면서 가계대출은 강력 관리하라는 금융당국의 모순된 요구에 은행들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을 모두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갈팡질팡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국내 은행의 경우 주택 관련 대출 집중도가 높은 상황으로 금융불균형이 누증되고, 주택가격 조정 시 건전성이 악화되는 등 시스템리스크로의 전이가 우려된다”면서 “금융시장 안정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가계대출 관리 문제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을 경우 금융당국의 관리 압박이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은행들로 부터 매월 2회씩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출 데이터를 보고 받으며 가계대출 증가 추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특히 신용대출에 대해서는 소득대비대출비율(LTI) 적용 카드까지 고심 중이다.
문제는 정부의 2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 및 은행권 자체 제한 조치로 이달 대출 문턱이 크게 높아졌음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올해 △1월 9000억 원 △3월 4조 9000억 원 △5월 5조3000억 원 △6월 4조2000억 원 △7월 5조2000억 원 △8월 9조5000억 원으로 증가 추세다.
이달 들어서도 증가세 이어지고 있다. 전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27조2313억 원으로 지난달 말 725조364억 원 보다 2조1949억 원 불었다. 같은 기간 주담대는 568조6616억 원에서 570억1170억 원으로 1조4554억 원이나 확대됐다. 신용대출도 103조4562억 원에서 103조9971억 원으로 5409억 원 늘었다.
은행권은 “DSR 2단계 시행 이전에 접수됐던 대출들이 실행되면서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당장 수치가 잡히지 않자 당국의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은행권의 자율관리 원칙’이라고 내세운 이상 책임이 은행권에 돌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관리하고 있는 은행들은 유주택자에 대한 대출 ‘전면 금지’를 내세운 타 은행들의 대책을 모두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유주택 세대의 수도권 주택 추가 구입 목적의 주담대 취급을 제한하고 있으며 신한은행도 이날부터 신규 구입목적의 주담대를 1주택자 처분조건을 포함한 무주택 가구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특히 국민·신한은행은 신용대출도 연소득 이내로 제한했다. 반면 하나·농협은행은 아직 유주택자에 대한 규제나 신용대출 제한까지는 나서지 않고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현재 가계대출과 관련해 모든 대책을 검토 중”이라면서 “조만간 대책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규제를 조일대로 조인 은행들은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우리은행이 결혼, 직장·학교 수도권 이전 등의 가계대출 취급 제한 예외 조건을 발표한 데 이어 신한은행은 최대 연 소득까지만 내주기로 한 신용대출을 본인 결혼이나 직계가족 사망, 자녀 출산 등의 경우 연 소득의 150%(최대 1억 원)까지로 늘렸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실수요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실수요자 심사 전담팀’도 가동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율관리라는 명령이 떨어진 이상 은행들간 규제 수준을 맞추게 될 것”이라며 “실수요자 보호 측면에서는 결혼이나 이사, 장례 등 예외 사례에 대한 특별 대출 한도가 부여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