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여름과 작별하며

입력 2024-08-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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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아스팔트의 아스콘이 녹아내리는 불볕더위도 한결 누그러졌다. 폭우로 곳곳에 생긴 수해의 흔적만 남긴 채 여름은 물러간다. 더위에 지쳐 종일 잠이나 자던 반려동물들은 생기를 되찾고, 빗물 스민 벽지는 얼룩진 채 들뜨고 음습한 데에서는 곰팡이가 자라난다. 폭염 속에서 나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위기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을까? 기후 변화에 대한 기우는 내 과민함 탓인가? 내 스스로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올여름 축산 농가에서 닭 수십만 마리가 온열질병으로 폐사했다. 뭍만 뜨거운 게 아니라 바다도 유례없이 뜨거웠다. 수온이 높아져서 근해의 양식어장에서 광어나 우럭 따위가 집단 폐사를 했다.

온난화 영향으로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구 생물 멸종의 시작되는 징후가 아닐까? 지구에는 다섯 차례의 생물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공룡의 멸종을 뺀 나머지는 갑작스런 기후변화가 원인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기후변화가 만드는 여섯 번째의 위기를 향해 가는 게 아닐까?

산업혁명 이전 서른다섯 살이던 유럽 국가들의 기대수명은 현재는 여든이 넘는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싱가포르, 홍콩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기대수명도 여든이 넘는다. 한 통계에 따르면, 여든 안팎의 기대수명을 누리는 70억 명이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사육한 닭 650억 마리를 해마다 먹어치운다. 우리는 공장식 농장에서 대량 생산한 닭과 돼지에게서 동물성 단백질을 취하고, 날마다 플라스틱을 비롯해 생활쓰레기를 내놓는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석유나 가스 같은 화석 연료를 펑펑 쓰며 이로 인해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한다. 그 결과로 극지방의 만년설은 녹고, 열대우림은 대규모 벌목으로 생물들이 터전을 잃은 채 멸종 위기에 내몰린다.

지구가 위기 상태라는 증거들은 차고 넘치지만 우리는 이런 징거들은 힐끗 보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외면해버린다. 인류는 전쟁, 기근, 멸종, 기후변화, 바이러스의 습격 같은 갖가지 위기를 맞고 있다. 그중 기후변화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이다. 진짜 위기는 무엇인가? 그것이 인간이 위기가 일상화된 지구를 떠나서는 살 데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누구도 이 심각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것은 누군가가, 혹은 다른 나라에서 나서서 해결하겠지, 하는 낙관론이 우리 안의 무관심 편향을 키운 탓이다. 나 역시 머리로는 기후변화의 심각함을 인식하면서도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행태를 멈추지는 않았다.

찬란하지만 짧고 덧없던 여름의 빛은 사라지고 있다. 계절이 끝난다는 것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기척,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죽음이다. 생물의 대멸종 위기를 앞두고서도 나는 태평하게 내 생애 중 가장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인류의 생명과 문명을 파괴할 대재앙보다 곧 고지될 전기료 폭탄을 더 염려했다. 일요일엔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하고, 주중에는 반바지를 입고 카페나 도서관에 나가서 시집 서른 권쯤을 읽었다. 저녁마다 황도와 후무사 자두 서른 개쯤을 먹고 났더니, 어느덧 여름은 끝나간다. 폭염이 지나가듯 기후변화의 위기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 난망한 꿈이나 꾸며 또 한 번의 여름과 작별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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