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구가 더워지는 건 가마솥에 불을 지펴 내용물을 끓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불이 장작을 태운 결과가 아니라, 태양이 자신의 열을 지구로 바로 던진 결과라는 게 다를 뿐이다. 이처럼 열이 다른 전달체 없이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곧바로 이동하는 걸 ‘복사(Radiation)’라 부른다.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워 먹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복사 현상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루 동안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열 에너지는 얼마나 될까? 대략 10의 22제곱 줄(J) 정도다. 전 세계가 1년간 소비하는 에너지양의 100배가 넘는 수치이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양의 태양열이 매일 지구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런데 이 열로 지구 전체가 모두 고르게 덥혀지는 건 아니다. 이유는 복사 에너지의 흡수 정도가 물체의 표면 상태나 색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밝은 색을 띠고, 광택이 나며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물체일수록 복사열을 적게 흡수하고, 방출 또한 적다. 전기 주전자의 표면이 광색나는 은색인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즉, 포트 밖으로 빠져나가는 열의 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땅 위에 이불처럼 펼쳐진 눈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 흰색 덕분에 지구에 도달한 태양열이 과도하게(?) 땅 속으로 흡수되는 걸 막아준다. 지구 온난화를 말할 때 남극 눈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언급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남극의 눈과 얼음은 지구의 온도가 과도하게 오르는 걸 막을 수 있는, 일종의 쿨링팩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남극이 변하고 있다.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대륙의 만년설 양이 줄고 대륙 얼음층의 두께가 현저히 얇아졌다. 빙하가 녹는 속도도 급격히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거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2022년 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는 관광객 수 증가와 더불어 대륙에서 활동하는 사람 수가 많아진 데 따른 결과라 한다.
극지방 여행이라고 하면 크루즈 선을 타고 남극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게 주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블랙카본(BC: Black Carbon)이 다량으로 발생한다. 즉, 석유를 태워 배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먼지, 분진, 검은 그을음 따위가 생기는데, 이를 총칭해 ‘검은 탄소’라고 한다. 이 유기물의 침공을 받은 눈이나 얼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빨리 녹는다. 이유는 ‘검다’라는 색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순백일 때보다 더 많은 (태양)열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결국 관광을 비롯해 검은 탄소를 발생시키는 행위는 남극 대륙의 만년설 및 빙하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연구 결과는 이런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연구팀은 우선 남극 대륙의 북쪽 끝에서 남쪽 엘스워스 산맥까지 약 2000km의 횡단면에 걸쳐 28개 지역의 눈 샘플을 채취해 BC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연구 시설과 인기 있는 해안 관광 착륙 장소 주변 눈 속의 BC 함량이 대륙의 다른 곳에서 측정된 수준보다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관광업에 의한 BC 발자국을 살펴본 결과, 한 사람의 관광객으로 인해 줄어드는 눈의 양이 83t(톤)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말하자면 남극 대륙을 한번 보고 온다는 건 자기 몸무게의 1000배가 넘는 양의 남극 눈을 녹이고 온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IAATO(국제남극투어운영자협회)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연평균 남극 관광자수는 7만5000명 정도라고 한다. 이는 매년 관광으로 인해 눈이 녹는 양이 4메가톤 이상임을 뜻한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과도한 여행으로 환경이 고통받고 있다는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장소, 새로운 문화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향한 과소비는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이 연구 결과를 보니 제발 남극 한 곳만이라도 사람 손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청정지역으로 남기자고 소리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