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인용하면 ‘객관성 강화’ 같지만
데이터는 언제나 선별‧가공되는 것
잘못된 분석에 사건 오도 조심해야
법원은 ‘노동조합 간 차별’ 등 부당 노동행위가 있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통계적인 추정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인사고과에 따라 상여금을 지급해 오던 A 사에서 노조원과 비조합원이 모두 생산직으로서 동질의 균등한 근로자 집단이라고 판단한 뒤, 그럼에도 성과평가에서 ‘통계적으로 현격한 격차’가 있었다면 부당 노동행위(차별)에 관한 사용자 의도가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또한 여러 하급심 판결에서는 승진이나 전보발령과 관련, 비슷한 방식으로 차별 내지 부당 노동행위를 인정한 바 있다. 가령 노조원과 비조합원을 비교해서 노동조합원이 지방 발령되는 비율이 비조합원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으면 노조원을 차별하기 위한 ‘의도’의 전보발령이라고 추정한다. 이런 추정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반대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는 방식이다.
통계 분석을 통해 노동소송에서도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판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이 가지는 의미와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위험도 있어 보인다.
우선 모든 데이터는 한계와 편향을 가진다. 때로는 데이터가 스스로 결론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소송에 제출된 데이터는 항상 누군가의 의사에 따라 선별되고 가공된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공공기관 계약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의 차별이 문제된 사건에서 계약직 근로자들은 문서 생성 개수에 관한 통계를 제시하며, 계약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근로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업무를 수행했고 그럼에도 임금 등 근로조건이 열악하여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1심 판결은 계약직 근로자들의 주장을 인용했다. 공공기관이 항소해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다시 문서에서 사용된 주요 단어들을 하나하나 집계했다. 그 결과 계약직 근로자들이 작성한 문서는 비용지출, 전표처리 등에 집중돼 있는 반면 정규직 근로자들이 작성한 문서는 연구개발이나 검토 등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재판 결과 역시 뒤집혔다.
한편 두 근로자 집단 간에 통계적인 비교를 하기 위해서는 두 집단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요소 외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실제로는 이를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노조원과 비조합원은 노동조합 가입 사실만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동일한 집단일까?
노동조합과 회사 간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회사와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안 좋은 평가가 예상되는 근로자들이 성과급 차등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에 많이 가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정은 정량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일단은 두 집단이 동질적인 집단이라고 전제하고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막상 비교한 결과, 평가나 임금 등에 차이가 있다면 차별의 의도가 추정되고 이를 뒤집기는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나아가 통계적인 접근 방법이 사용자의 ‘의도’에 치우친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통계 자료를 통한 분석은 주로 전반적인 상황을 통해 사용자의 ‘의도’를 추정하는 데 사용된다.
개별적으로 판단할 때는 정당한 인사 조치인지 부당한 차별인지 애매모호했던 사건들이 통계 자료를 통해 확인되는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판단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통계 자료는 객관적 자료의 외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 속 의도까지도 객관적으로 확인된다는 착시 효과를 만들기 쉽다.
기업에서 다루고 있는 자료가 풍부해지고 자세해지면서 소송에서 이를 다루는 방법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분석기법이 발전할수록 잘못된 분석에 의해 사건이 오도될 위험도 많아 면밀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