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비사업 내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 표준계약서는 지난 2010년 폐지된 이후 14년 만에 부활한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정비사업 공사비 산출 근거를 마련한 만큼 분쟁 해소에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건설업계는 조합과 시공사 갈등 원인인 공사비 조정의 근거가 생긴 만큼 분쟁이 일부 감소하겠지만, 의무 적용이 아닌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23일 국토부는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지자체와 관련 협회에 배포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 주요 내용은 △공사비 산출 근거 명확화 △설계변경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기준 마련 등이다.
이에 시공사가 제안하는 공사비 총액을 바탕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되, 선정 후 계약 체결 전까지 시공사가 세부 산출내역서를 제출토록 하고, 이를 첨부해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또 설계변경 때는 변경 이유와 신규 추가 자재 여부에 따라 공사비 조정 기준을 세부적으로 포함한다.
또 물가변동률도 기존 소비자물가지수 대신 관급공사 등 국가계약법에 따른 지수 조정률 방식을 적용해 물가변동률을 현실화한다. 증액 소요가 큰 굴착공사 시 지질 상태가 기존 지질조사서와 달라 시공사가 증액을 요청하는 경우 증빙서류를 감리 담당자에게 검증받은 후 증액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번 표준계약서 마련 배경에 대해 박용선 국토부 주택정비과장은 “정비사업은 공사비 계산 때 총액으로 계약하는데 이는 향후 공사비 증액이 필요할 때 시공사는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조합은 시공사의 공사비 부풀리기 우려를 제기하는 등 분쟁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계약 때 세부 공사비 계산 내용을 제출하도록 해 추후 공사비 조정의 근거가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건설업계에선 이번 표준계약서 도입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표준계약서 사용은 의무가 아닌 권고 사안인 만큼 앞으로 발생할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을 100% 해결할 수단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법적 강제성이 없어 한계가 뚜렷하지만 최근 워낙 분쟁 중인 정비사업장이 많다 보니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표준계약서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겠지만, 갈등 해소 등에 큰 변화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제도나 법적 장치가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정비사업은 사업장마다 조건과 지역 상황이 다른데 계약 조건을 표준화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맞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비사업 공사 내용을 조합원 등이 투명하게 알 수 있고, 증액 가이드라인이 확정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사비 인상에 따른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허가권을 갖는 지자체가 표준계약서 사용을 유도하면 조합과 시공사는 실무에서 사용을 확대할 수밖에 없고, 사업장별 상황은 표준계약서에 특약을 넣는 식으로 반영하게 될 것”이라며 “증액 등 공사계약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투명성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모든 계약 요건이 세분화·구체화하면 시공사도 공사비 산정 때 더 보수적인 잣대를 적용할 것이고 이러면 결국 공사비 상승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