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점진적으로 ‘저출산’ 용어를 ‘저출생’으로 대체하는 추세다.
17일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지난해 1월 30일(교육부)부터 이날까지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행정안전부, 국무조정실,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질병관리청,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10개 정부기관이 총 54회 공식 보도자료에서 ‘저출생’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들 기관이 ‘저출산’을 완전히 ‘저출생’으로 대체한 건 아니다. 복지부와 고용부를 제외한 대부분 기관에선 두 용어를 혼용하고 있다.
저출산과 저출생은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 저출산은 합계출산율(출산율)이 낮다는 의미다. 저출생은 출생률이 낮은 상태다. 일반적으로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인 ‘조출생률’을 의미한다. 가파른 출산율 감소로 출생아가 줄어든 서울에 대해선 ‘저출산’, 출산율이 올라도 가임여성 감소로 출생아가 줄어든 지방에 대해선 ‘저출생’으로 정의하는 게 적절하다.
다만, 정부의 저출산·저출생 용어 사용에는 뚜렷한 기준이 없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법령상 용어는 아직 ‘저출산’이고, 정부 내에서 어떤 말을 쓸지 합의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애초에 저출생이란 말은 저출산과 구분을 위해 생겨난 게 아니다. ‘저출산’이란 용어가 여성을 ‘출산 도구화’한다는 지적에 따라 여성계를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해 번진 것이다.
기준 없는 ‘저출생’ 용어 남용이 저출산 문제의 본질을 희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센터장은 “서울은 출산율이 극단적으로 낮지만 출생률만 보면 문제가 없다. 반면, 지방은 출산율이 높지만 여성이 적어 출생률이 바닥”이라며 “특정한 용어로 단순하게 현상을 진단하면 진짜 문제를 가리거나 대책을 왜곡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대체 지표 사용을 늘리는 분야는 저출산뿐 아니다. 인구 감소로 고용지표가 악화하자 ‘취업자·실업자 수’ 대신 ‘고용률·실업률’을 고용 분야 대표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다만, ‘고용률’이 ‘취업자 수’보다 고용시장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아니다. 고용률은 근로시간, 종사상 지위, 임금수준 등 ‘고용의 질’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용률이 올랐어도 그 배경이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 증가라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고용부 관계자는 “취업자 수 같은 절댓값은 모수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비율 통계가 적절하다고 본다”면서도 “해석 오류·왜곡 소지가 없는 완전한 가치 중립적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 만큼, 통계를 공표할 때 최대한 객관적이고 상세한 해석을 함께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