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아이가 군에 가면 거리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진다. 중고등학교 때는 내 아이같이 보이지 않던 젊은들이 내 아이가 군인일 때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키가 크거나 작거나, 혼자 있거나 무리지어 있거나 길에서 만나는 모든 군인이 내 아이처럼 보인다. 군복을 입은 그 군인을 내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처럼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그래도 나는 좀 덜한 편이다. 아내는 길을 가다가 군인을 보면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눈물을 짓는다. 저 아이들의 모습이 저토록 씩씩한데 왜 그러냐고 해도 한참 바라보다 말없이 눈가의 눈물을 찍어낸다. 아마 아내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예전에 불렀던 군가대로, 사나이 한목숨 바쳐 그 아이들이 이 땅을 지키고 우리의 단잠을 지킨다면 그런 그 아들들의 안녕을 기도하고 지키는 것은 이 땅의 어머니들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아마 이 땅의 부모들 마음속에 가장 안타까운 자리에 있는 자식이 더 애틋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와도 길에서 군인을 보면 그 아이들이 여전히 내 아이 같아 보인다. 운전을 할 때 한적한 외곽도로에서 사병들을 태우고 가는 트럭을 만나도 이 땅의 엄마들은 그 트럭을 함부로 앞지르기 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 트럭을 오래 같은 속도로 뒤따라가며 눈물짓는 엄마들도 있다. 그 눈물은 그냥 안 돼 보여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남의 귀한 집 자식들, 모두 무사하게 군 생활 잘 마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염원의 기도와 같은 눈물이 아닐까.
부모의 눈에는 한없이 어린 저 군인이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 품에 안기듯 아침저녁 식탁에 함께 앉는다는 것, 이렇게 한집안 식구가 함께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어느 가정에서나 아름답고 또 넉넉하며 귀한 모습이다. 내가 아직 소년이고 학생이었던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늘 강조했던 것이 바로 밥상에서 얼굴 보이기였다.
특히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슬그머니 인사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집안 어른들이 여간 상심해하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인사를 받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자식이 밖에 나가서 행한 일이 바르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면 집에 들어와 어른 얼굴 보기를 피한다는 말씀이었다. 우리 형제들도 자라는 동안 그런 날이 많았다. 밖에 나가 싸움을 해 얼굴에 멍이 들었거나 못된 짓을 하고 돌아왔을 때 앞마당으로 바로 들어서지 못하고 뒤란을 돌아 슬그머니 골방을 통해 제 방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아마 저 군인도 중고등학교 시절, 또 대학 시절 그런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과 함께 정답게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기를 가장 소망할 것이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버지 어머니 역시 아이가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얼른 식탁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릴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집을 떠나 있는 아이는 아이대로, 또 기다리는 어른은 어른대로 가족의 의미를 사랑을 다시 배우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내게 이따금 잔소리처럼 ‘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을 듣는 아이 역시 어른이 되면 자기 아이들에게 아빠는 너처럼 그러지 않았다는 식으로 ‘출필곡 반필면’을 말할지 모른다. 어릴 때 내가 떳떳하지 못했을 때는 그것이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그것이야말로 가족 간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율로 가족 전체의 안전을 지켜나가게 한 가족 간의 관심이자, 그 관심의 힘이 아닌가 싶다.
바로 그렇게 아래로 베푸는 큰 사랑과 그 사랑에 감사함을 느끼는 자식의 도리, 바로 이런 것이 서로를 아끼는 가족의 힘이며, 또 자녀들의 미래의 따뜻한 삶을 이끄는 바른 힘이 아닐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