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는 정부와 정치권의 ‘태만·직무유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여야 정쟁에 중요한 금융 법안들이 줄줄이 좌절되거나 금융소비자 보호와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혁신 법안들이 줄줄이 표류하고 있어서다. 올해 국회 정무위원회에 발의된 법안 10건 중 9건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상태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전임 정부보다 시장 경제, 민간 주도 경제 체제를 표방하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관치금융’을 넘어선 ‘정치금융’이 국내 금융산업의 혁신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7일 본지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금융 부처·기관을 소관하는 국회 정무위에 올해 발의된 금융 관련 법안 380개 중 가결된 법안 수는 31개(8%), 상임위에 계류 중인 법안은 349개(91%)로 집계됐다. 21대 국회로 범위를 확장해도 전체 1842건의 법안 중 계류 법안은 1382건으로(75%)에 달했다. 처리된 안건은 460건(24%)에 그쳤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글로벌 시장 등 시급한 현안과 관련된 금융 법안이 산적한 상황이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러 정치적 이슈로 인해 입법 움직임은 사실상 마비됐다. 금융권 경쟁 촉진과 안정 등을 위해 법안 통과가 시급한 데도, 정치 논리에 휩싸여 정작 필요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는 것이다.
정작 ‘혁신’할 수 있는 제도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하루가 멀다하고 금융권을 ‘서민 갑질하는 죄인’으로 지목, 연일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은행권을 향해 “이자 장사만 하지 말고 중소·서민 금융 지원에 협조하라”고 압박했다. 같은 날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은행권의 상생금융 64조 원 중 취약층 지원은 10조 원에 불과하다”며 “단순 금리 인하는 통화정책 교란으로 이어지는 만큼 상생금융, 실제 서민을 지원하는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저격했다.
금융당국 수장들도 ‘상생’을 명분삼아 은행권을 연일 질타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은행이 (상생금융 등)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신한금융지주와 하나은행이 내놓은 각각 1000억 원 규모의 대책이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에둘러 평가 절하했다. 전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은행권이 그동안 진행해온 상생금융 관련 노력에도 진정성에 의문이 있다”고 직격했다.
이와 관련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들의 관심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고 정책의 중요도 순서를 잘 파악한 후 펼쳐야 한다”며 “시장 정책을 왜곡하지 않는 상생금융이 필요하고, 시장 원리에 맞게 은행권의 경쟁이 더 많아져야 소비자의 선택과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