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MB정부 청와대 기획관리실은 2008년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대외비 문서를 만들었다. 좌파 이념을 지향하는 문화계의 이름난 인사들이 예술을 선전·선동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예시로 든 게 봉준호 감독 ‘괴물’(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과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북한을 동지로 묘사) 등이다.
가장 자유분방하고 도발적으로 사고해야 할 문화예술인을 고루한 이념의 잣대로 분류하고, 각종 지원과 투자에서 배제하려던 정부의 시도가 있었다면 처벌될 수 있을까. 현재 진행 중인 손해배상 건을 살펴보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무려 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진행된 공판은 8차례에 불과했다. 원고 수십 명의 사례를 상세히 살펴보고 검증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피고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과 관련된 정보를 국정원으로부터 받기 어려워 재판 진행이 더뎠다는 얘기도 나돈다.
이런 상황은 국가 주도 블랙리스트가 끼치는 해악이 뭔지 잘 보여준다. 일단 한번 실행되면 피해자는 자신이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왜 해당 목록에 올랐는지도 알지 못한 채 불이익을 받는다. 뒤늦게 그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법적 책임을 물으려 해봐도, 정보 공유조차 쉽게 해주지 않는 국가 기관을 상대로 수년간 씨름을 벌여야 한다.
손해배상 소송의 선고는 오는 12월 22일에 나온다. 이런 중에 MB정부 시절 문체부 장관을 지내고 최근 귀환한 유인촌 장관은 “당시 블랙리스트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고 못박았다. 사법부의 판단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문화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이 다시 떠오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