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동안 한적한 곳에서 책과 시간을 보내는 ‘북케이션’을 즐길 요량이라면, 이름을 널리 알린 베스트셀러부터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주목할 만한 신작까지 아우르는 추천 목록이 필요할 터. 서점가 전통의 강자인 소설은 물론이고 현대인의 영원한 관심사인 경제 분야, 최근 부쩍 출간량이 많아진 환경·의료·노동 분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주목작을 소개한다.
정보라·무라카미 하루키 신작에도 눈길
영화팬은 ‘오펜하이머 각본집’, ‘동조자’ 선택을
남들 다 읽었다는 베스트셀러를 놓쳐 아쉬웠다면 천명관 작가의 ‘고래’나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부터 손에 쥐어보는 건 어떨까. 출간 19년 만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저력을 보인 ‘고래’는 특유의 맛깔나는 문장 덕에 쉴 틈 없이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작품.
지난해 출간돼 오랜 기간 서점가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역시 해방 이후 고단한 역사에 고스란히 노출된 개인의 삶을 흡인력 있게 묘사했다.
새로 나온 도서를 찾는다면 ‘저주토끼’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신작 ‘고통에 관하여’에 주목할 만하다. 알약만 먹으면 모든 종류의 고통이 없어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사건을 다룬 SF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43년 만에 재집필해 완성한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도 빼놓을 수 없는 주목작이다. 시간도, 그림자도 없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머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를 좋아한다면 지난 6월 출간한 '꿀벌의 예언1'도 독서 목록에 담아두자. 2047년 꿀벌이 사라진 뒤 식량 생산 감소 등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상상력을 토대로 완성된 작품이다.
영화를 즐겨 보는 독자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각본집을 추천한다. 영문 시나리오를 우리 말로 번역해 옮긴 것으로 이미 본 극 중 장면을 음미하며 즐기기 좋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해 2024년 공개 예정인 HBO 드라마 ‘동조자’의 동명 원작 소설도 권할 만하다. 미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정체성을 지닌 이중간첩의 시선에서 써내려간 장편소설로 비엣타인 응우옌 작가에게 2016년 퓰리처상을 안긴 바 있다.
권력 거머쥔 원자재 기업 밀착 취재
환경, 의료, 노동 문제 다룬 주목작도
금리가 오르고 물가가 뛰는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오건영 신한은행 WM그룹 팀장이 쓴 ‘위기의 역사’를 탐독 후보에 올릴 만하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지난 역사 속 경제위기를 다루면서 과거 신문 기사 200건을 발췌해 해석해 신뢰도를 높였다. 삽화 비중이 높아 깨알 같은 글자에 지친 독자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주요한 축 중 하나인 원자재의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유전, 광산, 농장 등 각종 원자재의 수급을 쥐락펴락하는 ‘얼굴없는 중개자들’의 이야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세계 최대 석유 중계업체 비톨의 이안 테일러 등 당사자를 지근거리에서 인터뷰한 20년 경력 기자 출신 저자들의 독보적인 취재물이다.
지구가 처한 심각한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탄소버블’은 흥미로운 입문서가 될 수 있다. 탄소국경세, 배출권거래제 등 세계 무대의 주요 아젠다로 오르내리는 개념이 장차 한국 경제에 어떤 식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지를 짚어본다.
의료 소비자에게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현행 체계에 문제의식을 지녔다면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는 공감가는 분석서다. 힘들게 잡은 대형 병원 예약은 왜 ‘3분 진료’로 끝나는지, 어째서 의사를 대신하는 값비싼 기계 검사가 줄줄이 이어지는지를 현직 의사의 시선에서 날카롭게 바라본다.
교도소 정신병동 교도관, 대규모 도살장 노동자 등 대부분이 심리적으로 꺼리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줘야만 사회가 돌아가는 일을 다룬 ‘더티 워크’는 노동 문제 관심을 둔 독자 취향을 저격한다.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짚는 시선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